2016. 12. 30.

나의 마인드

목사로서
나의 마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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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와도 좋고
오면 더좋고

따로 해도 좋고
함께 하면 더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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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뭣이 중헌디는 다 아니까~

.
.
.

^^

교회서 뭘할까

교회가서 뭘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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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런 그림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교적 없음"
"일꾼 없음"


그럼 뭘 할까요?

"성찬"
"나눔"


예수님의 이름으로 만나서,

공관복음에서 말씀하신대로,
"떡과 잔에 참여함으로 기념하고"

요한복음에서 말씀하신대로,
"새계명을 지켜 행하기로 다짐하는"

그런 모임, 나눔.

.
.
.

2016. 12. 28.

신앙의 여정

신앙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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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100%
그대로 받고 신종하는 교단의 신학을 했습니다.

성경 무오류, 유기적 영감설을 기반으로
성경신학, 조직신학 등을 공부했습니다(M.div).

신의 절대적 주권과 섭리를 믿었고,
인간은 부패하여 죽어 마땅한 죄인이라 믿었습니다.
예수께서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유일한 구원자라 믿었습니다.

따라서, "예수천당 불신지옥"이 진리라고 믿었습니다.

더 말할 것도 없죠.
목사 안수 받고 배운대로 사역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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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처음 고민하게 된 것은 창조vs진화 였습니다.

창세기 1-11장까지의 역사를 문자 그대로 받았고,
그대로 반영한 것이 창조과학이었습니다.
나름 열심히 공부했던 것 같습니다.
사역하며 그대로 가르치기도 했었구요.

그러나,

문자 그대로 받을 수 있는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제 신앙에 커다란 균열을 만들었습니다.

2.
객관적 사실성에서 가장 큰 문제는 원죄였습니다.

창세기 1-11장의 역사가 문자 그대로 받을 수 없는,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는 것은 원죄를 의심하게 되었지요.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는 대전제가
무너지는 지점에 온 것입니다.

3.
천국과 지옥의 존재를 생각하기 이전에,
하나님의 심판의 내용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으로 사람을 심판하실까?"

"다만 예수를 믿었다는 이유로 악인을 천국에 보내시고,
 다만 예수를 믿지 않았다는 이유로 선인을 지옥에 보내시는 분이신가?"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 아니다."

대표적인 이야기가 영화 "밀양"이지요.

4.
그리고 나서,
성경이 뭘 이야기 하고 싶어 하는지를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배운대로,
구약은 오실 메시아를 가리킨다고 했고,
신약은 다시 오실 메시아를 말한다면,
그 "메시야는 누구고,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가?"에 주목했습니다.

바로 "예수"죠.

5.
예수는 정말 모호했습니다.

극우에서 극좌에 이르기까지.
기독교에서 신비주의에 이르기까지.

그래도 제가 기독교인이고, 목사이니(!)
성경에서 그리는 예수를 주목했습니다.

"그를 높이기 위해 만든 장치"를 제거하고,
"그가 말했다"는 것만 모아봤습니다.
(물론 많은 서적에서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지요.

"예수천당 불신지옥이 아니다."

"예수의 가르침의 핵심은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다."

6.
마지막 질문이 이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굳이 예수여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제가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굳이 예수여야 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예수의 가르침의 핵심은
"보편의 가치"에 닿아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7.
눈을 뜨고 세상을 보니,
"신비"라고 부르는 현상은
기독교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두려움으로 사람을 얼마나 묶어둘 수 있을까요?

누구나 하는 질문 앞에 모순적인 답만 제시한다면,
변증이라는 이름으로 자기들만의 답안을 제시한다면,
그러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속았다!"

제가 그랬습니다.

8.
사람은 태어나기 전부터
죽어 마땅한 죄인이 아닙니다.
원죄 따위는 없습니다.
원죄는 개념상 무지와 다릅니다.

사람은 생각할 수 있는 존재고,
어떤 생각을 할지 선택할 수 있는 존재고,
그 생각을 붙잡고 새로운 길을 만들 수 있는 존재입니다.

자신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존재가,
바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평범함, 특별함

사람의 평범함
사람의 특별함

=====

사람은 특별합니다.
신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신의 형상대로 태어난,
신적 존재가 바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특별합니다.

동시에 사람은 평범합니다.
모든 사람이 똑같기 때문입니다.

100억 인구 중에서
신의 자녀가 아닌 사람은
단 한명도 없습니다.

사람이라고 불리는 이상,
인간이라고 불리는 이상,
그는 신의 자녀입니다.
그는 신적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당신보다 열등하거나,
내가 당신보다 우월한 것은 없습니다.

만약 있다면,
그거야 말로 "자기 생각"이겠지요.

"내가 우월하다"라는 자기 생각.
"내가 열등하다"라는 자기 생각.

.
.
.

누구보다도 우월하다고 할 필요도
누구보다도 열등하다고 할 필요도 없이,

나는 나로서,
당신은 당신으로서,

그저 "사람답게 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2016. 12. 27.

종교 또는 윤리?

종교인가,
윤리인가?

=====

신비가 없는 기독교는
윤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데요?
종교가 될 수 없어요.

천국도 없고 지옥도 없다면,
부활이 없고 재림이 없다면,
굳이 예수를 믿어야 하는 이유는 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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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나눈 대화의 결론이다.

모든 종교는 신비가 있다.
그러나 신비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구약을 보면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내 말을 듣고 내 언약을 지키라"고 하셨다.
그리고 주신 것이 "십계명"이다.

신약을 보면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내 계명을 지키면 우리는 하나다"고 하셨다.
그리고 주신 것이 "새계명"이다.

신비를 추구하고,
신비를 경험하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계명을 따라 살라"고 하셨다.

나는 계명의 정신을 이렇게 생각한다.

"사람답게 살라"

따라서
굳이 예수여야 할 필요가 없다.

예수를 떠날 필요도 없고,
예수에게 붙잡혀 있을 필요도 없다.

누구나 알고,
누구나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길.

"사람답게 사는 것"

그렇게 살아가면 되는게 아닌가?

신앙고백

신앙고백이라는 것은,
"나는 이렇게 믿는다"라는 것이다.

=====

고백의 문장이 같을 수 있다.
똑같이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것처럼.

고백의 내용도 같을 수 있다.
이를 위한 신앙고백서가 있듯이.

그러나,
고백의 문장이 같아도,
고백의 내용은 다를 수 있다.

100명의 신앙고백이
내용까지 같을 수는 없다.

100명의 신앙고백은
100개의 서로 다른 내용을 가진다.

"나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이 한 문장만 가지고도
나의 생각과, 당신의 생각이,
얼마나 같고, 얼마나 다르겠는가!

-----

다양성을 품을 수 있는 곳,
그러나 "예수"라는 이름으로 모인 곳,
그곳이 교회인가 보다.

천지창조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했다."

하나님은 사람이기에(인내천)

"태초에 사람이 천지를 창조했다."

=====

제 주위에는 신비한 경험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귀신을 본다는 분,
과거와 미래를 본다는 분,
조상신을 본다는 분,
오라를 본다는 분,
천리안이 있다는 분...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그 사람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다르게 본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절에는 귀신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들이 타락천사 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들이 구천을 떠도는 영혼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들이 정령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절에 귀신이 많다는 것 자체가 구라"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각각
"자신들이 정의한 대로"
그렇게 경험합니다.

그렇다면,
이건 무엇을 의미할까요?

과거에 저는 (배운대로)
사탄의 졸개들이 사람들을
미혹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제 눈에 안경"이라고 생각합니다.

.
.
.

물리적인 영역에서,
누구나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영역에서,
우주와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나와 내가 보고 듣고 경험하는 세상에 대해서는,
내가 갖고 있는 세계관 대로,
내가 쓰고 있는 안경 대로,
그렇게 형성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했다."
"태초에 사람이 천지를 창조했다."
"태초에 사람이 자기 세상을 창조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성경무오?

웃긴다.

성경이 동성애를 죄라 하니
동성애는 죄가 맞다고 한다.

성경에 써있으면 다 맞는 말인가?

=====

아, 전 성경무오설이라든가
유기적 영감설을 받지 않습니다.
그냥 하나의 이야기로 봅니다.

우솝우화라든가
천일야화 같은 이야기 말이죠.

교훈도 있고 생각 거리도 있는.
그러나 절대적 진리로 받진 않습니다.

왜냐구요?
한 마디라도 풀어서 말씀해보세요.
제가 딱 한마디만 질문할께요.

"그거 누구 생각이에요?"

천주교 평, 안정복

조선 시대 실학자의 천주교 평가에 관한 흥미로운 여담

조선 실학자 안정복 [安鼎福, 1712 ~ 1791]

서학(천주교)과 역학은 물론 불교, 노장사상, 무속 등 온갖 분야를 두루 공부했는데 천주교는 아니라고 결론.

천주교는 사람을 속이는 혹세무민 사기사상이라고 평가.

1. 사람의 육체를 죄악의 근원으로 보아 원수로 간주한다. 그러나 자기 몸은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므로 그것은 부모를 원수로 여기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도덕의 근본인 효를 모독하는 것이다. 또한 동신(童身)을 귀하게 여기는 교리도 부부와 인륜과 음양의 근본원리를 거부하는 것이다.

2. 조상의 제사에 대한 거부도 효의 원리를 거부하는 것이다. 효는 인간과 천지가 소통하는 근본원리다. 서양 종교는 하늘의 참된 가르침이 될 수 없으며, 도덕규범이 타락한 것일 뿐이다.

3. 원수를 사랑하라는 이야기는 묵자의 겸애설보다 더 과격한, 현실성없는 이야기다.

4. 천국과 지옥과 영혼불멸 등 불확실한 것들을 교리의 중심으로 삼아서 비합리적이다. 살아있을 때의 일도 다 알지 못하는데, 어찌 죽은 후의 일을 알 수 있겠는가? 일상적 관심을 벗어나 초월적 환상에 빠지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5 인간을 윤리적으로 만들기 위하여 마귀의 기만과 유혹을 주의하라고 말하는데, 인간이 본 적도 없는 마귀에 대한 언급은 오히려 인간의 도덕적 노력을 소홀하게 만들며 현세의 선악에 대한 책임을 경시하도록 할 뿐이다.

6. 창조설 역시 비합리적이다. 천지는 음과 양의 두 기운이 혼합되어 이루어지는 개벽의 세계이므로 인격체로서의 조물주가 끼어들 여지가 전혀 없다.

7. 신이 인간의 모습을 갖추었다는 주장도 틀렸다. 신은 우주를 구성하는 도덕적, 합리적 원리들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8. 내세를 강조하기 때문에 반사회적이다. 인간이 전력을 기울여야 할 일은 현세에서의 선행이다. 신과 영혼의 구원을 주위사람에 대한 의무보다 상위에 둠으로써 인간공동체의 근본적 중요성을 거부하게 된다.

9. 예수가 아담의 자손인 이상, 예수는 인간일 뿐이며 신이 될 수는 없다.

10. 아담과 이브의 원죄도 신의 모함일 뿐이다. 아담과 이브가 죄악에 빠지지 않도록 사전에 잘 가르쳤어야지, 어떻게 죄악에 빠지도록 유도해 놓고 그들에게 그토록 가혹한 벌을 내리는가? 그것은 어진 스승의 태도일 수 없다. 그리고 오늘날의 가난과 질병과 죽음 등을 겪는 것이 아담과 이브의 원죄 때문이라고 가르치는 것은 매우 가소로운 논리적 모순이다.

11. 사람이 선을 행해야 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너무도 마땅한 도리일 뿐이다. 그러한 사회적 선을 행하는 윤리적 바탕이 사람의 본성에 들어있다. 왜 인간이 처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한 죽은 후에 보상을 받기 위해서 행동해야 하는가? 이는 현세의 고뇌에서 해탈하기 위해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사회적 의무를 저버리는 일이며, 근원적으로 이기적이다. 인간이 구원을 바라는 이기심으로써는 도저히 바른 세상의 도덕적 토대를 이룰 수 없다.

12. 세례, 죄의 고백, 공개적 기도 등은 불교제식과 비슷하다. 이는 그저 불교나 미륵불 신앙의 아류에 불과하다.

요셉의 의로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법대로 사는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낼 생각도 없었으므로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마음먹었다.

- 공동번역 마 1:19

=====

질문이 생겼다.

"파혼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요셉은 마리아와 무관한 사람이 된다.

그런데 마리아는 임신했다.
아기를 낳을 수 밖에 없다.

마리아는 어떻게 될까?
사생아를 가진 여자가 된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평생을 낙인 찍혀 살게 되거나,
돌에 맞아 죽게 될 것이다.

마리아가 그렇게 되더라도,
요셉은 무슨 상관일까?

아무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파혼했으니까.

그렇다면 요셉이 의롭다는 것은
도대체 뭘 말하는 걸까?
비꼬는 걸까?
아니면, 요셉의 의와
하나님의 의는 다르다는 것을 말하는 걸까.

-----

아내가 될 여자에게
다른 남자의 아기가 생겼다.

남자의 입장에서는
파혼하는 것, 분명 문제 없는 것이다.
간음했다고 신고하는 것, 분명 문제 없는 것이다.

그런데 여자는?

.
.
.

요셉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에
주의 천사가 꿈에 나타나서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어라."

- 공동번역, 마 1:20a

2016. 12. 16.

죽을 때

죽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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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가 덜 된 신자가 죽을 때,
그 순간에 신께서
100% 성화 되도록 하신다면,

그렇게 하실 수 있는 신이,
왜 '누군가는 지옥에 보내실까?'

-----

천국에는 죄악이 없다고 한다.
(물론 사후에 가는 천국에)

살아 생전 악했던,
그러나 신자였던 A.

그가 죽고,
신자였기 때문에 천국에 갔다.

천국에는 죄악이 없다 하였는데,
그의 사고방식은 악한 채로 죽었다.

그렇다면, 그는 천국에 어떻게 있을 수 있는가?

"신이 그를 죽기 직전에(혹은 죽음의 순간)
100% 성화되도록 하셔서,
죄악이 완전히 씻겨지도록 하셨다.
그래서 선하게 바꾸셔서 천국에 들어가게 하신다."

.
.
.

라는 이야기를 듣고.
참 부조리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또다시 생각난다.
#내로남불

산타클로스

산타클로스

=====

산타클로스가 역사적 사실로,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는 것을 보고,
"저렇게 가르치면 안된다"라고 하는 분이,

성경을 100% 역사적 사실로 믿고,
그렇게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

나는 그분 앞에서
할 말을 잃었다.

.
.
.

그래서 '신앙'인가보다.

그래서 모든 것이

그래서 모든 것이
"그대로 괜찮아"가 되는게 대속인가?
[송기득, 역사의 예수 중]

=====

- 악법을 어기는 것이 (대속해야 할) 죄인가?
→ 악법을 어긴 자가 속죄 받는 것인가?

- 사람다움을 져버리는 것이 (대속해야 할)죄인가?
→ 사람다움을 져버린 자가 속죄 받는 것인가?

- 불신앙이 (대속해야 할)죄인가?
→ 불신앙이 무엇인가?

- 권력자의 횡포가 (대속해야 할)죄인가?
→ 사람들을 지배하는 자가 속죄 받는 것인가?

- 사회, 경제, 정치, 종교의 체제와 구조가 (대속해야 할) 죄인가?
→ 체제와 구조가 속죄 받는 것인가?

그래서 모든 것이
“그래도 괜찮아”가 되는게 대속인가?

2016. 12. 15.

그럼 그렇지

그럼 그렇지.

=====

교회 안의 자비와
교회 밖의 자비가
다른 점은,

교회 안의 자비는
"신을 의존하는 자비"이고

교회 밖의 자비는
"그저 인간적인 자비"이다.

-----

그러니까,
"자비" 자체는 같지만,
누구를 의지하고 있느냐가
다르다는 거겠지.

"소속의 문제"

그러니 결국,
"아무리 자비로와도
결국 지옥가니까
그런 자비로움은 의미없어"
라고 할 수 밖에.

한마디로,
"예수천당 불신지옥"

.
.
.

결론.
"내로남불"

신학과 신앙은

신학과 신앙은...

=====

같지 않죠^^

왜냐하면,
학문으로서 아니더라도
신앙으로는 기니까요.

대학자라고 해도
신앙인은 아닐 수 있다는 말,
저는 자주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신학을 포기하고
신앙도 포기했

.
.
.

그냥 내 맘대로 살꺼야^^

뭐가 다릅니까?

[질문]
뭐가 다릅니까?

=====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 갈 5:22

소위 성령의 열매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내용은
교회 안이나 밖이나
누구나 인정할 만한 가치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만 예를 들어 질문합니다.

성령의 열매로서 자비와
보편적인 자비는 같습니까, 다릅니까?

교회 안에서 말하는 자비와
교회 밖에서 말하는 자비는
같습니까, 다릅니까?

교회 안에서 말하는 자비가
교회 밖에서 말하는 자비와
특별하고 귀중하고
남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
.
.

교회가 안과 밖을 가르기 위해
세운 벽이 참 높습니다.
그런데 그 벽이
제 눈엔 말장난 같습니다.

자기들의 가치만 특별하고
타종교의 가치와 차별하는 한,

공의의 하나님은 그들만의 하나님일 뿐,
결코 만유의 하나님은 되실 수 없을 것입니다.

-----

조직신학과 실천신학에서
윤리를 다룰 것입니다.

저라고 공부 안해봤겠습니까?
과거에는 정말 그게 옳은 줄 알았습니다.
희열을 느끼며 공부했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아닙니다.

지금의 제게 위의 주장은 그저,
내가 하면 사랑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장난으로 밖에 안보입니다.

말장난이 아니라면, 진정
교회 안에서의 자비와
교회 밖에서의 자비가 다르다면,
뭐가 다른지 알려주세요.

2016. 12. 13.

산 너머 산

산 너머 산

=====

교회가 보편적 가치를 인정하여,
교회의 가치와 세상의 가치를 구분하지 않고,
동등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할지라도,
그 다음의 문제가 있는데,
바로 '원죄-대속→예수천당 불신지옥'의 문제이다.

"저 사람은 진짜 존경하는 사람이야.
같이 일해서 아는데, 진짜 착해.
겸손하고, 섬기고, 배풀고, 돌보고...

종교도 다른데 직장에서 채플 참석하라니까
싫은 소리 한번 한 적 없이
기독교인인 우리보다 더 성실히 참석하더라고...

그런데 참 안타까워.
예수님을 안믿거든. 지옥갈건데 어쩌나..."

.
.
.

어렵다 어려워.

교회 문제 해결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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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만이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을 소유했다는 것이
그저 착각이라는 진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보편적 가치와 상식이란 진리 앞에
겸손히 배우려 해야 할 것입니다.

.
.
.

그런데 이것이 산 넘어 산이라는 거죠.

가능할까요?
불가능할 겁니다.

2016. 12. 12.

동성애 문제?

동성애 문제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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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 동성애 문제, 어떻게 생각해?

하늘
: 인간이라면, 기본권을 보장해줘야 합니다.

교회
: 당신 목사잖아. 성경적으로 볼 때, 동성애 문제에 대해 뭐라고 해야하나?

하늘
: 당연히 사람으로서 누려야할 권리를 누릴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교회
: 당신 목사가 그렇게 말해도 되?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지?

하늘
: 왜 당신의 논리를 사회가, 국가가 따라야 합니까? 당신 논리는 당신 교회에서나 주장하십쇼. 국가가 따르지 않는다고 저주하지나 말고.

.
.
.

교회는 매사에 이런 식이다.
자기들이 생각하는 답을 하나님의 뜻이라 믿고,
그걸 따르지 않는 존재를 부정하고 배제하는 식이다.

실제로 교인과 나눈 대화다.
나라가 왜 이 모양 이 꼴이냐고?

뭐가 바른 건지, 뭐가 잘못된 건지를
애초에 판단할 기준이 틀렸기 때문이다.

교회는 이렇게 말하겠지.
"성경이 기준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라고."

아니,
"인간"이 기준이어야 한다.

"사람을 사람답게 살게 하는 것"
"내가 나 답게 살게 하는 것"

인자를 사랑하며

공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며

=====

제가 잘못 알았습니다.

공의는 '미쉬파트'이고,
인자는 '헤쎄드'였습니다.

미쉬파트를 행하고,
헤쎄드를 사랑하는 것,

그것이 미가 선지자가 말한
"주께서 보이신 선한 것이요,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입니다.

-----

부끄럽네요ㅠ

2016. 12. 10.

Who are you, GOD?

공포와 두려움의 하나님,
그는 예수가 말한 하나님이 아니다.

=====

"나는 너를 모른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가?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내 말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자"

예수의 말은 무엇이었나?

그가 율법과 선지자의 핵심이라고 말한 것은,
"대접받고자 하는대로 대접하는 것"이라 하였다.

그가 준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였다.

그가 제자에게 한 말은,
"무한히 용서하라"였다.

.
.
.

정의와 공의의 하나님이 두렵다?
좋다, 정말 두렵다면,

"정의를 행하고 공의를 행하라!"

미가 선지자가 말했잖는가!

"공의를 행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뭐가 정의인지,
뭐가 공의인지 모르겠다고?

정의와 공의는 전부 사람간에 발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주 단순하고도 명료하지 않는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며,
내가 받고자 하는대로 대접하고,
내가 받고 싶지 않는 대접은 행하지 않는 것"

이게 아니라면 도대체,
당신이 말하는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는 뭐냐?

(극혐) 교회는 변할 수 있는가?

(극혐)
교회는 변할 수 있는가?

=====

저는 정말 회의적입니다.
가능성 0%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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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 중심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교회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기도해야 한다.
바른 교리를 알아야 한다.
성경을 배워야 한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한다.
죄인임을 깨달아야 한다.

마귀는 불신자를 건들지 않는다.
마귀는 신자를 건든다. 왜?
불신자는 어차피 망하니까 건들 필요가 없다.
신자는 냅두면 사니까 죽게 방해해야 한다.
그래서 마귀는 신자를 괴롭힌다.

한국 사회가 이런 것은
신자가 신자답지 못해서이다.
그리고 마귀가 그렇게 만들어서이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기도하라.

.
.
.

무슨 놈의 마귀 탓입니까?
예수 안 믿는게 좋겠네요, 마귀가 안 건드니까!

그렇게 기도하는 사람들은 다 뭡니까?
기도가 그렇게 부족합니까?

도대체 당신들이 믿는 하나님은 뭡니까?
있긴 있습니까? 뭐하고 계십니까?
칼을 벼루고 계십니까? 심판하려고?

말 안들으면 욕하고 때리고 죽이고.
딱, 깡패와 다름 없네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어야 하는,
인, 의, 예, 지, 신 - 이런 기본적인게 없어서 문제지.
그게 "예수 안믿어서, 마귀 때문에, 기도하지 않아서"입니까?

나라가 어지러운게 마귀 때문이냐구요!

죄인이라서 어지럽다구요?
바른 신앙이 아니라서 어지럽다구요?

믿지 않던 사람에게 나라를 맡겼을 때가
훨씬 더 사람답게 살았습니다.

도대체가...

(극혐) 어떤 목사의 생각

(극혐)
어떤 목사님의 생각

=====

오늘날 한국교회의 문제는

잘못된 인간론,
잘못된 신론,
잘못된 구원론,
잘못된 종말론,
잘못된 교회론 때문이다.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성도가,

올바른 인간론,
올바른 신론,
올바른 구원론,
올바른 종말론,
올바른 교회론을 가질 때,

비로소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

천주교는 이단인데,
왜 이단으로 가냐면,
그냥 인간적인 이유거든?

게다가 올바른 교회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지.

뭐가 옳은지 그른지 안다면,
천주교로 갈 수가 없어.

-----

오늘날 한국교회의 문제는
준비된 목사가 없기 때문인데,
진짜가 뭔지 가르쳐야하는데,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제대로 가르치질 않는 건지,
아니면 못하는 건지.

제대로된 신앙은
하나님의 주권 중심 신앙인데,
왜 자꾸 인간 중심으로 가는지.
그래서 한국교회가 참 걱정된다.

.
.
.

이런 주장들...
저는 받아들일 수 없어요.
진짜 극혐이에요...

2016. 12. 9.

이신칭의? 불신지옥?

이신칭의 문제에 대하여

=====

그러니까 사람이 선하면 되는 건가요, 아닌가요?

다시 말해,
어떤 사람 말처럼 양심대로 행하며,
"내가 싫은 것은 남에게도 하지 않고,
내가 받고 싶은 대로 남에게 행하며 살면"
되는 건가요, 아닌가요?

.
.
.

이 논쟁이 과연
"불신지옥"을 넘어갈 수 있을까?

2016. 12. 8.

재림

저는 재림을 믿지 않습니다.

=====

저는 그동안 배워왔던 식으로,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기 위하여
다시오신다"고 믿지 않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2000년 전에 죽은(부활하여 승천했다 믿는) 예수가
오늘날(혹은 미래에)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는
"과거에 살았다 과거에 죽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

혹 윤회하여 다시 태어난다면 모를까.
(물론 검증 불가능한 신앙이긴 합니다만,
티벳의 달라이 라마가 그 예라고 할 수 있겠죠.)

.
.
.

그러나 윤회를 미신이라고 치부하는 사람들이
부활과 재림은 사실이라고 믿는 것은
참 아이러니 합니다.

2016. 12. 7.

제 눈의 안경

이 세상에 진실 같은 건 없어.
그게 현실이다.
누구든지 신이든 악마든 될 수 있다.
누군가가 그걸 진실이라 말하면 말이지.

 - 진격의 거인 88화 중

그래, 예수가 부활했을지도 모르지.
하나님이 예수 믿는 자만 심판 면제할 수도 있고.
안믿는다고 다 지옥 보낼 수도 있지.

알게 뭐야?
이 세상에 진실 같은 건,
그저 '누구의 말에 귀 기울이느냐'에 좌우될 뿐.

96%가 아니라고 해도,
여전히 4%는 옳다고 하는 걸 봐도,
"제 눈에 안경"임이 여실히 드러나는데.

.
.
.

그러니, 나는 적어도,
"이게 내가 쓴 안경"인 것만 알아도
충분하다고 생각해.

기적의 논리

1. 복음서끼리 기록이 서로 맞음
→ "역시! 신뢰할만한 역사적 기록!"

2. 모순이 있음
→ "역시! 저자들끼리 짜고치지 않았다는 증거!"

.
.
.

멋지다, 정신 승리!
기적의 논리!

누군가를 위한다는 건

누군가를 위한다는 건,
그 사람을 위해 행동해서
결과를 만드는거야.

- 아인 44화

물론 마음 써주는 것도 있겠지.
그러나 변화는 '행동'으로 옮겨졌을 때,
발생한다고 생각해.

그래서, 공감...^^

신의 뜻과 명령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명령?

=====

구약을 읽다가
이 두 가지를 이렇게 정리해봤다.

1.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나와 한 약속(언약)을 지키는 것"

2. 하나님과 한 약속(언약)은 무엇인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것"(출 19:5)

3. 하나님은 무엇을 말(명령)하셨나?
"십계명"(출 20:1~17)

-----

같은 식으로 신약을 생각해보니,
예수도 비슷하게 말씀하셨다.

1. 예수의 뜻은 무엇인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것"

2. 예수의 말은 무엇인가?
"새 계명이다."

3. 새 계명은 무엇인가?
"서로 사랑하라."

.
.
.

하나님의 뜻은,
그리고 명령은,

1. 구약은 십계명을 지켜라.
2. 신약은 새계명을 행하라.

2016. 12. 6.

복음!

복음을 이렇게 생각해봅니다.

=====

더 이상 나를 얽매이고 있는 건 없다고,
나는 자유라고,

내가 내딛는 걸음이 나의 길을 만들고,
그 길이 나를 천국으로 인도한다고,

다른 누군가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 주는 것이라고.

더 이상 메시아,
더 이상 정도령,
더 이상 미륵 붓다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고,

로마가 무너질 소식이 아니라,
로마가 그대로 있더라도,
다윗의 나라가 세워지지 않더라도,

천국은 얼마든지 나에 의해서
세워질 수 있다라고,

저는 이것이 예수께서 전한 복음이라 생각합니다.

2016. 12. 5.

복음?

전제를 이렇게 깔고 싶다.
"지옥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야기하고 싶다.
"어떻게 살고 싶습니까?"

왜냐하면...

=====

어떤 사람들이 말하는
"복음"이라는 건 참 이상한 논리다.
자꾸만 어른이 되지 못하게 만든다.

변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발걸음을 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부족한 존재가 천국에 가게 되었으니 복음 아닌가?"

과연 그럴까?
그러면 묻겠다. 천국은 어디에 있는가?

"죽어서 심판대 앞에서 '예수믿어' 천국간다."

이런 소리는 꺼내지 마라.
저런 복음은 그저 '마약'에 불과하다.
저건 그저 '책임을 회피하는 주장'에 불과하다.

"죽어서 천국가게 되었으니 참 감사하다."

그러면 오늘은? 현실은? 내 삶은? 우리의 삶은?

-----

지옥 가지 않는다는 전제를 가지고,
복음을 이야기 하면 어떨까?

.
.
.

나는 그저 부족한 자가 천국가게 되어 감사하다가 아닌,
"천국은 내가 어떤 발걸음을 떼냐에 달렸습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본래지옥?

사람은 본래 지옥갈 죄인이라는 주장에 대하여

=====

사람이 죽으면 천국과 지옥 중 어느 한 쪽을 간다고 한다.

누가 천국에 가는가, 누가 지옥에 가는가.
하나님께서 정하시고, 하나님께서 판단하신다고 한다.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1. 사람이 지옥에 가는 것은 하나님 책임이라면,
    사람에겐 잘못이 없지 않는가?

여기에서 소위 개혁파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전제를 바꿔버린다.

1) 본래 사람은 다 지옥에 갈 존재였다.
2) 하나님께서 그 중에서 일부를 구원하신 것이다.
3) 그러므로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

여기서 다시금 질문이 생긴다.

2. 왜 본래 사람은 지옥에 갈 존재인가?

보통 여기에서
아담의 원죄를 끄집어낸다.
그리고 아담의 원죄가 전가되었다고 한다.
그러면 묻고 싶다.

3. 아담의 원죄가 전가된 나를 누가 존재하게 했는가?

여기에서 두 가지로 갈린다.

1) 영혼 유전설
2) 영혼 창조설

만약 나는 유전된다고 한다면,
아담의 후손은 마땅히 지옥에 갈 존재이다.

그러나 영혼 유전설은
"영혼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다"고 하는
교회에 의하여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그러므로 영혼 창조설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은 아담의 원죄와 상관없이
지옥갈 존재를 창조하신다고 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영혼을 창조하여,
창조된 영혼이 지옥에 갈 존재로
태어나게 하신다.

그렇다면, 다시 최초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4. 천국에 가고 지옥에 갈지 누가 결정하는가?

이젠 아담의 원죄로 인해,
사람은 본래 지옥행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위의 논리에 따르면,
지옥에 갈 존재를 창조하시는 분이,
다름 아닌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

1. 영혼 유전설(靈魂 遺傳說 raducianism) 영혼 전이론. 인간의 영혼은 출생할 때 육체와 더불어 부모에게서 전달된다는 이 이론은 하나님께서 아담의 영혼을 창조하실 때만 생기를 불어넣으셨으며 하와의 영혼 창조에 대한 언급이 없을 뿐만 아니라(갈2:23,27,28;고전11:8) 하나님의 창조 사역은 6일로 마쳤으며(창2:2) 자손은 조상의 허리에 있다는 성경 귀절(창46:26;히7:9,10)의 지지를 받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이 이론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배격된다. ① 유전론자들이 제시하는 성경적 근거는 엄정하지 않다. 창조가 6일로 끝났다는 주장도 인간의 중생과 같은 재창조 사역을 무시한 것이다. ② 그리스도께서 모친 마리아로부터 육체나 영혼을 물려받았기 떄문에 참인간이었던 것으로 주장하나 오히려 이 견해는 예수의 무죄성에 위배된다. ③ 부모의 영혼이 여러 자녀에게 분할된다는 주장은 영혼의 단순성이라는 속성에 위배된다. ④ 자식의 영혼이 부모 가운데 어느 쪽에서 기원하든지 설명할 수 없다. 따라서 개개의 영혼은 하나님의 독특한 창조 행위에 의하여 만들어 진다고 하는 교회에 의하여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2. 영혼 창조설(靈魂 創造說, creationism) 하나님의 직접적인 창조 행위로 영혼이 생겨나서 육체와 결합된다는 주장이다. 이 이론은 모두 하나님의 창조물이라는 사실(창2:7;사42:5;슥12:2)과 조화를 이룬다. 각각의 영혼은 하나님에 의하여 무로부터(ex nihilo) 창조되어 태어날 때에, 혹은 잉태될 때에 그 몸에 심기워진 것이라는 교회의 보통 교리이다.

나의 신앙

당신은 예수를
어떻게 믿습니까?

=====

보수주의 교단에서 배운바에 따르면,
예수를 '믿는다'라고 했을 때에는,

1) 성령 잉태
2) 동정녀 탄생
3) 대속의 죽음
4) 부활과 승천
5) 재림과 심판을 믿는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믿지 않습니다.

-----

저는 예수님을 인류의 스승 중 한 분이라 믿습니다.
그러나 저 개인의 "구원자"로서는 믿지 않습니다.

생각해보니 저의 구원자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그렇다면 보다 분명하게,
"유일한 구원자"라고 믿지 않습니다.

석가모니 붓다가 누군가의 구원자가 될 수 있고,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신천지의 이만희가
누군가에겐 구원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오해는 없으시길 바랍니다.
"유일한 구원자"라고 믿지 않음을 강조할 뿐입니다.

-----

저는 예수님을 저의 스승 중 한 분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릅니다.

제가 생각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4가지였는데,
실천을 위한 황금율을 빼놓았더라구요.

"대접받고자 하는대로 남을 대접하라"

4가지 가르침을
하나의 실천 방안으로 요약하면,
아마 저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하튼, 저는 그렇게,
예수님을 저의 스승이라 믿고 따릅니다.

2016. 12. 4.

예수천당 불신지옥

저는 단언컨대(오만일 수 있겠지만)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란
주장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말을 많이 합니다.
기독교인의 선함은 하나님께 인정받는 선이지만,
불신자의 선함은 하나님께서 외면하는 선이라고.

과연 그럴까요?

-----

또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선의 기준을 하나님께 둘 때에만
성경에 둘 때에만 명료하다고.

"예수가 죄 값을 사했으니,
예수를 믿어야 비로서
선을 행할 수 있다"라고...

과연 그럴까요?

-----

예수님의 말씀이 기억나는군요.

"열매를 보면 무슨 나무를 안다."

누구를 믿어야 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요컨대, "예수천당"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불신지옥"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편을 가릅니다.

"쟤는 교회다니지 않아."

"쟤는 지옥갈 사람이야."

그 '사람'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천국이냐 지옥이냐'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

또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쟤는 참 어리석어,
 어떻게 이단이 될 수 있지?
 어떻게 다른 종교를 믿을 수가 있지?"

.
.
.

차별, 배척, 무시...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요?

전부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저는 이 주장, "예수천당 불신지옥"이
문제의 근원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천국과 지옥

저는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는
이렇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

어느 무사가 선사를 찾아와서 천국과 지옥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선사는 무사를 모욕한다.
화가 난 무사는 칼을 빼어 선사를 죽이려 한다.
그때! 선사가 소리친다.

"지옥의 문이 열리는구나!"

이 말에 선사의 가르침을 깨달은 무사가 칼을 거두자, 선사는 다시 말한다.

"천국의 문이 열리는구나!"

-----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달린 것이지,
누구를 믿냐 안믿냐의 문제가 아닌 것이지요.

선한 마음에서 악한 열매가 나올 수 없고,
악한 마음에서 선한 열매가 나올 수 없으니,
오해는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
.
.

불교와 기독교의 만남이네요^^

예수님의 교훈

저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

1. 인내천(人乃天)
2. 인과응보(因果應報)
3. 경천애인(敬天愛人)
4. 무한용서(無限容恕)

-----

4항에 대해서는 부연할 것이 많습니다만,
기본적으로는 2항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오해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길벗교회

길벗교회
(길에서 만난 친구들의 교회)

=====

개척을 염두하고 상상했던
성찬식과 나눔을 시행하는
편안하고 자유로운 교회였습니다.

개척이라니... 싶지만,
커밍아웃 할 수 없다면,
차라리 제 나름으로 재해석된
교회를 개척하는게 좋지 않겠나 싶습니다.

사실, 산 넘어 산이고,
안하는게 더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만,

ㅎㅎㅎ
여하튼, 반가웠습니다^^

사임했습니다

교회를 사임했습니다.

=====

곧 든 생각은,
첫째로는, 교회 가기 싫다.
둘째로는, 어느 교회 가지?

송상호 선생님 책을 아내와 읽었습니다.
#우리_아이_절대_교회_보내지_마라 입니다.
아내가 다 읽고(재밌대요^^) 하는 말이,

"이 책 대로라면, 교회를 왜 해요?"
"만약 제가 신앙의 1대라면, 당장 교회 안나갈거에요."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가족 때문이에요."

.
.
.

어쨌든,
교회를 가야하니,
당장 고민입니다.

일단,
내일 갈 곳은 정했고,
그리고...

2016. 11. 25.

뻔한 놀이

"나도 모르는, 나의 세계관"
그렇지만, 가장 합리적인 세계관은
"기독교"라고 주장하고 싶은 책.

=====

이제 이 책을 마지막으로,
문자/보수주의 기독교와 관련된 책을
안 읽게 되었으면 좋겠다, 하하하.

뻔한 놀이인거 같다.

밖에 나오지 못했다면,
나도 안에서 이러고 있겠지.
그리고 밖을 보며 손가락질 하겠지.

뻔한 이야기 자꾸 들춰서,
경계만 자꾸 확인하면 뭘하나.
이제 털어버리고 길을 떠나야지.

"미련일랑 두지 말자."

갈 길이 멀다.

부활신앙과 기독교

당신은 신약성경이 분명하게 가르치는 것처럼 나사렛 예수가 죽음에서 부활했다고 믿지 않으므로 기독교적 유신론자가 될 수 없다.

 - 나도 모르는, 나의 세계관, p.68

예수의 부활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다면 기독교는 철저히 거짓이다. 그러므로 만약 유신론적 세계관을 지닌 사람이 예수가 죽음에서 부활했다는 것을 부인하거나 심각하게 의심한다면, 그는 비기독교적인 유신론적 세계관Non-Christian Theist Worldview을 가졌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 나도 모르는, 나의 세계관, p.89

=====

그렇다. 이게 기독교지.
부활을 의심하는 자는 기독교인이 아니다.

그리고 부활의 의미를
다르게 생각하는 자도 기독교인이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다.

-----

그저,
나는 나다^^

역사적 증언?

예수의 부활에 관한 역사적 증거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사복음서는 모두 예수의 부활에 대한
"목격자들의 '역사적 증언'을 제시한다."

실제로 기독교 교회는 예수가 구약성경의 예언과,
그 자신의 예견에 대한 성취로
"'죽음에서 부활했다'는 제자들의 증언"위에 세워졌다.

 - 나도 모르는, 나의 세계관, p.91.

=====

아... 머리 아파.
'역사적 증언'이 뭘까?

증언이 아니라 주장이겠지.
그런 주장을 실제로 했다는 거고.

그러니까 '역사적'이란 말은,
'실제로 주장했다'는 것이고,

'증언'이라는 말은,
'주장'이란 단어를 교묘하게 바꾼 것이지.

-----

이 책 참 웃긴다.
교묘하게,
기독교의 우월성을 주장하고 있어.

"다른 세계관들과 비교할 때 기독교적 세계관이 최상의 종합적인 설명을 해줄 수 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모든 것을 고려해 볼 때, 기독교적 세계관은 그런 설명을 해 줄 가능성이 아주 많다. 기독교는 철학적으로 풍성하고, 실존적으로 만족스러운 세계관이다."

 - 나도 모르는, 나의 세계관, pp.104-105

2016. 11. 20.

동성애?

시앙스 앙퓌즈,
"신약성경이 말하는 동성애에 대한 여섯 가지 진실"
댓글을 보다가.

=====

"성경 내부의 문화적 맥락은
일관되게 동성애에 대한
증오 및 단죄를 전제하고 있다."

-----

사실 저도 성경을 보다보면
그렇게 읽히긴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저는 성경이 '정확 무오한 유일한 법칙'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성경이 그렇게 말하건,
혹은 그렇게 말하지 않건 간에,
성경에 영향을 별로 받지 않습니다.

출 22:18 너는 무당을 살려두지 말라

제 주변에도 "박수 무당"이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그들에게 돌을 듭니까?
그들을 정죄합니까? 그러지 않잖습니까.

그저,

"성경은 이렇게 써 있구만?"

저는 이정도가 딱 좋다고 생각합니다.
진짜 고민해야 할 영역은 다른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천국과 지옥

이 정도만 살펴봐도, 근본/보수주의가 주장하는
천국/지옥설은 성립되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제는, FACT랑 무관하게 FAITH를 주장하는 것이다.

"믿음의 눈으로 보세요. 그러면 볼 수 있답니다."

이럴 땐 GG를 치는 것이다.

"그렇게 믿으세요. 저는 안믿을래요."

=====

사후세계

2016. 11. 19.

나의 일

사람이 변하는 것은,
누군가가 계기가 되어줄 수 있지만,
결국 스스로 의지를 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누가 대신 '나를 변신시켜주는 일'은 없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이, 혹은
신이 해주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늘 걸어가던 길을
이번엔 다른 길로 가겠다는
스스로의 의지가 다른 길로 가게 하고,

늘 똑같이 생각하던 것을
이번엔 다르게 바라보겠다는
스스로의 의지가 다른 생각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
.
.

누군가에게 등떠밀려 하게 되면,
계속 하려는 나의 의지가 없다면,
결국 제자리로 돌아올 뿐입니다.

2016. 11. 18.

미국 대통령 당선?

지도로 읽는다 세계 5대 종교 역사도감

아주 쉽고 간단하게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유대교, 힌두교를 다룬다.

세계 5대 종교 역사 도감

=====

그냥 술술 읽고 있었는데,
두 대목에 이르러 시선이 고정되었다.

첫째는,
WASP가 아니면
대통령에 당선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W: White
AS: Anglo-Saxon
P: Protestant

-----

둘째는,
복음파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이다.

복음파(Evangelical)의 가장 특징적인 점은
'성서를 문자 그대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진화론과 동성 결혼 등의
'성서와 모순되는 모든 주장과 행위'는 죄악이다.

레이건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
부시가 재선에 성공한 것도,
복음파의 지지를 얻은 덕분이다.

레이건은 가족의 가치를 호소하여 지지를 얻었고,
부시는 임신 중절과 동성 결혼 반대를 내세워 지지를 얻었고,

.
.
.

#그럼_트럼프는?

2016. 11. 16.

예수를 믿는다?

왜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믿지 않을까요?

=====

저는 성경 무오, 근본, 보수진영에 속한 사람입니다.
여기에 속한 사람이기에 아는 것이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믿습니다.
다만, 믿음의 내용이 다를 뿐입니다.

기독교인들이 믿는 내용은,
1) 그가 나의 죄 때문에 죽으셨다.
2) 그의 죽으심으로 내 죄가 용서받았다.
3) 그가 부활하신 것이 증거다.
4) 그의 부활과 같이 나도 부활할 것이다.

이와 같이,
기독교인들이 믿는 내용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입니다.

예수의 가르침, 교훈, 비유, 계명은,
"믿음의 내용"이 아닙니다.
그저 부수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우선순위를 놓고 보면,
"죽음과 부활에 대한 믿음"이 가장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 믿음이 나의 "천국행"을 결정짓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예수의 가르침은 뭘까요?
바로, 천국행 티켓을 소유한 사람들에게는,
"상급"과 연결된 것에 불과합니다.

즉, 천국행 티켓을 소유한 자가
예수의 가르침도 지켜 행했다면
큰 상급을 받을 것이나,

지켜 행하지 않았다면,
"부끄러운 구원"을 받는 것이죠.

그러니 제일 중요한 것은,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은,
예수의 가르침을 따라 행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믿느냐"하는 것입니다.

-----

"예수천당 불신지옥"

이것이 기독교인들의 신앙을
아주 잘 드러내는 문구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아무런 의심없이 맹종했으나,
이제는 더 이상 따를 수가 없어,
고민 끝에 사역을 내려놓기로 결정했습니다.

어떤 설교를 듣고

사람에 대한 이해가,

"티끌과 같은"
"벌레와 같은"
"죽어 마땅한"

이런 전제를 가졌다면,
그런 신학에
무슨 희망이 있을까요?

-----

아, 희망이 없어서
'메시아'에 기대는 건가요?

ㅎㅎㅎ

2016. 11. 15.

누가 형벌을 받을까?

지옥에는 누가 가고
형벌은 누가 받을까요?

=====

비-기독교인들이 이 말을 했다면,
당연히 '악인', '범죄자'라고 생각하겠지만,

기독교인들이 이 말을 한다면,
아무래도 '불신자'라고 생각하게 된다.

지난 주 대화가 생각난다.

"아무리 선을 행해도,
예수 안믿으면 결국 지옥가는 거 아닌가요?"

이게 기독교의 현실이다.
에혀...

.
.
.

아, 박영돈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지옥형벌을 받아야 할 사람은,
불신자가 아닐 것이라 믿고 싶다.

-----

박영돈 교수

"요즘 심판과 지옥형벌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더 확고해진다."

세 가지 메시지

저는

.
.
.

=====

목사입니다만,
스스로 느끼기에
다만 자격증 소지자일 뿐
목자라고 생각되진 않습니다.

(누가 누굴 어디로 인도합니까ㅎㅎㅎ)

기독교인으로서 제가 가진 메시지는

"사람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받은 존재를
'자녀'라 부르고 그들을 사람이라 부르듯,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받은 존재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또한 하나님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마세요."

(이단각이죠. 우습게도, 옛날엔 제가
이런 말하는 사람을 향해 정죄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창조자입니다. '나'도 창조자입니다.
어떤 인생을 만들어갈지는 '나 자신'에게 달렸습니다."

그리고,

"다만, 뿌린대로 거둘 뿐입니다."

-----

이제 11월도 반절이 지나갑니다.
이곳에서의 사역도 얼마 남지 않았네요.

가을 낙엽이 예쁘게 물들었습니다.
잔뜩 쌓인 낙엽을 보며,
지나간 바람을 붙잡아 봅니다.

.
.
.

#하늘이 되렵니다ㅋㅋㅋ

내 주인은 나다


보편적 진리

"역사적 사실은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에 의미를 갖는다."

그런가요?

=====

글쎄요.

동화책도 역사적 사실은 아니지만,
오늘날 의미를 가질 수 있지요.

소설책도 역사적 사실은 아니지만,
오늘날 의미를 가질 수 있구요.

무협지도, 만화책도 의미를 가질 수 있구요.
제가 쓴 일기도 마찬가지에요.

그런데요,
역사적 사실은 아니지만,
거기에 부여한 의미는
보편적 진리로 규정될 수 있나요?

예를 들어,
제가 쓴 일기의 의미를
포편적 진리로 규정해서
당신도 그렇게 받아들이게
해야 하나요?

그게 옳은가요?
아니면 이단인가요?

.
.
.

아, 종교 말이에요.

뭐가 문제냐

문제의 핵심을 그 사람의 '종교'에 가져가서

이 사람은 정통이니까 문제 없어, 혹은
이 사람은 이단이니까 문제 있어 같은

그런 판단이야말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

물론 저는,
위 사안과 상관없이,
종교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종교로부터 출애굽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나는 불편하다, 이 말이.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이 말이 참 불편하다.

2016. 11. 13.

감정이 상하면

감정이 상하면,
합리가 설 자리를 잃는다.

감정이 통하면,
합리를 초월해 버린다.

=====

별 것 아닌 일,
별 것 아니게 넘어갈 수도 있고,
기여코 사과를 받아낼 수도 있다.

가만 보니,
객관/합리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의 문제더라.

2016. 11. 10.

신학의 대립

예언자들의 메시지는
'하나님께 받아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자기의 생각을 말하는 것'인가?

=====

북이스라엘의 신학과
남유다의 신학은
첨예하게 대립했다.

남유다의 신학은 확장된 시온 신학으로,
"다윗언약은 영원하고 무조건적이기에
예루살렘이나 성전이 파괴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북이스라엘의 신학(예레미야)은,
"아니! 언약을 순종하지 않았기에
유다는 땅과 성전 모두를 잃게 될 것이야!"

한 세기 전 이사야는
시온 불가침을 설교했다.

이제 예레미야는
그것이 '잘못된 신학'이며,
백성들이 이 신학에 '희망을 거는 것'은
헛된 일임을 말한다.

-----

그렇기 때문에 폰 라트는
"예언자들의 메시지는
무시간적인 진리가 아니라,
'역사의 특정한 시간에
해당하는 특정한 말'
이라고 말한다.

 - 『예레미야서 더 가까이 보기』, pp.124-5

나란 무엇인가?

다듬어야 할 내용이지만,
어메이징 필로소피를 읽고,
한번 생각해 본 생각입니다ㅎㅎㅎ

=====

1. 르네 데카르트

르네 데카르트는 의심을 통해
'나'라는 존재를 확인했다.

모든 것은 의심하고 부정할 수 있으나,
의심하고 부정할 수 없는 유일한 대상이,
의심'하고' 부정'하고 있는 나라는 존재'였다.

2. 자유의지

거시세계의 물리법칙에 따르면,
모든 사건은,
과거 사건들의 상태(P)와
물리법칙(L)에 따라 발생한다.

따라서,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

그래서,
철학자들은 대체로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을 부정한다.

3. 토마스 아퀴나스

그런데, 제 1 원인은
모든 연쇄의 출발점이고,
사건들의 연쇄 바깥에 있는 것이다.

4. 자유의 의미

토마스 아퀴나스에 따르면,
제 1 원인은 사건들의 연쇄 바깥에 있다.
다른 말로 제 1 원인은
사건들에 '매여있지' 않다.

즉, 제 1 원인은 자유롭다.

5. 제 1 원인과 나

르네 데카르트에 따르면
모든 것을 의심하고 부정할 수 있지만,
의심과 부정으로부터 독립된,
만약 포함되면 모순을 일으키는 존재로,
'나'를 확인한다.

이 '나'에다가
'제 1 원인'을 넣으면 어떨까?
역시나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즉, 제 1 원인이 없으면
의심할 수도 없고
부정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 1 원인'을 '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6. 나와 자유

나는 모든 연쇄의 출발점이고,
사건들의 연쇄 바깥에 있다.
그렇다면 나는 사건들에 매여있지 않다.
즉, 나는 자유롭다.

7. 나는 누구인가?

구원의 다른 의미

에리히 프롬이 말하는 식으로
하나님을 이해한다면
구원(주인의 교체)는,

'하나님'이라는
또다른 주인이 생긴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라는
정체성의 회복이라 할 수 있겠다.

=====

구약과 후기 유대교 전승은 우상숭배 금지를 하나님 숭배나 그보다 높은 차원으로 격상시켰다. 우상숭배 흔적이 모두 지워져버린 경우에만 하나님을 숭배할 수 있다는 점이 아주 분명해졌다. 그래서 탈무드는 이렇게 말한다. “우상숭배를 거부하는 자는 누구든 모든 율법을 제대로 준수한 것이나 다름없다.”(훌린[Hullin] 5a)

 - 『너희도 신처럼 되리라』, pp.49-60.

보편 구원(Universal salvation)은 유대교를 고수하거나 심지어 하나님을 숭배하는 것과 상관이 없다. 우상숭배를 하지 않고, 하나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다고만 하면 인류는 행복의 조건을 달성할 것이다.

 - 『너희도 신처럼 되리라』, pp.60-71.

인간은 하나님에게 복종함으로서 1차적 유대(혈연, 지연, 사회관계)에 대한 애착을 버리고 다른 인간에게 복종하지 않을 수 있다. 즉, 하나님의 권위는 인간에게 인간의 권위로부터 벗어나는 자주성을 보장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가? 일반적으로 말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러나 탈무드의 율법과 후기 유대교 문헌에서는 인간에게 완전한 자율성을 보장하는 경향이 엿보인다.

 - 『너희도 신처럼 되리라』, pp.75-94.

구원이란?

구원이란?

늘 품었던 질문이지만,
이렇게 명쾌한 답이?!

'주인이 바뀐다.'

=====

성서에서 ‘구원’이라는 용어,
혹은 히브리 원어에 대한
또 다른 적절한 번역인 ‘해방’은
‘자유를 얻는다’는 뜻보다는
‘주인이 바뀐다’는 뜻으로 쓰인다.

구약과 신약에서 구원은 ‘주인의 교체’를 뜻한다.

 - 『예레미야서 더 가까이 보기』, p.115

-----

나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라면
나는 여전히
노예
.
.
.

2016. 11. 9.

예수의 길

성경에서 예수의 길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었던 길이라고 저는 읽었습니다.

따라서, 당연히,
세상 사람들은 악하고
예수의 길을 걷는 사람들은 선하다는
그런 전제를 가질 수 없습니다.

오히려, 예수의 길은
지극히 당연한 선함을,
지극히 당연한 사랑을
드러내는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두고 보라!

세상 사람들을 다 악하다고 전제하고
그래서 예수의 도를 행하는 사람을
핍박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하는
이런 대화. 밥맛입니다.

=====

정말 100% 공감합니다.
방금 전에도 아내와 그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헛점이 드러났네요.

늘 들어왔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선함보다
기독교인들의 선함이 훨씬 우월하다고.

세상 사람들의 선함은
죄인들의 변덕에 불과하다면,
기독교인들의 선함은
의인들의 선함이라고.

이런 식의 우월함을
들어왔고 배워왔습니다.

그러나
이게 말이나 됩니까?

선은 선입니다.
악은 악입니다.
누구나 압니다.

물론, 명료하게 나눌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상에서 누구나 공감하는 부분 역시 있습니다.

신자와 비신자로 선 긋는 대화,
저도 아주 싫어합니다.

-----

저는 인과응보를 믿습니다.
뿌린대로 거둔다고 봅니다.

신자는 독을 먹어도 괜찮고,
비신자는 아니라구요?

두고 보십시오.
독을 먹고도 괜찮은지.
악을 행하고도 괜찮은지.

생각해보라!

한번 생각해 보라!
성경 어디에,

고아와 과부를 보살피며
먹거리와 쉴자리를 제공하며
섬기고 봉사하고 헌신하고
사랑하고 용서하고 용납하고
이해하고 기다려주는 사람을

'단지 예수님 안 믿는다고'
'단지 하나님을 모른다고'

정죄하고 징벌하는 장면이 있는가!

-----

선한 사람을,
착한 사람을 향해,
진노하시는 하나님을,
본 적이 있는가!

-----

신자의 선함과
비신자의 선함을
다르다고 구분짓는
바로 그 기준은
누구의 것인가?

이성이 잠자고 있으면

이성이 잠자고 있으면 어쩔 수 없지요.
저도 한때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정신이 없던 시절입니다.

나를 나답게 살게 하는 것,
그보다 더 중요하고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누군가의 가치관에 의해서
종교의 기준에 의해서
내가 외면되어야 한다면,
차라리 그를,
차라리 종교를,
제가 외면하겠습니다.

이분이 말하는 기독교는,
이분이 말하는 가치관은,
이분이 말하는 기준은,
제가 외면해야 할 것이네요.

"나를 지키기 위해서."

존 맥아더의 정치 생각

니체

‧ 프리드리히 비헬름 니체(1844-1900)

“내 최고 관심사는 도덕의 개념이었소.
내 생각에 도덕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생명에 반하는 것’이오.

도덕주의자들은 인류를 개선시키려 하고 있소.
인류는 애초부터 개선될 필요가 없는데 말이오!

도덕주의자들은 기본적인 인간성,
즉 우리의 욕구, 우리의 본능 같은 것들을
부정하고 그걸 없애버리려 하고 있소.

다들 알겠소?
그게 바로 우리라는
존재의 본성인데 말이오!”

 - 어메이징 필로소피, p.169

2016. 11. 8.

철학자들은

‧ 철학자들은 대체로

“철학자들은 대체로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주장을 펼칩니다.”

 - 어메이징 필로소피, p.98

데이비드 흄

‧ 데이비드 흄(1711-1776)

“제 자유로운 행동은 욕망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욕망은 결정론 때문입니다.

제 욕망은 과거에 일어난 일과
물리법칙에 따라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 행위는 자유롭습니다.
왜냐하면 제 욕망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에는 그게 자유의 핵심입니다.

<여러분이 다른 것을 할 수도 있었다.>

제 욕망이 다를 수 있었다면,
다르게 행동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 양립가능론에서 말하는 자유의지

1. 인간의 행위는 욕망에 의해 결정된다.

2. 인간이 그 밖의 다른 어떤 것을 하기를 욕망한다면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참이다.

 - 어메이징 필로소피, pp.110-112

양립불가능론

‧ 양립불가능론에서 말하는 자유의지

“내가 A 이외의 행동을 할 수 없었다면,
A라는 행동은 내가 자유롭게 한 것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결정론이 참이라면, 우리에게는 자유의지가 없다.

만약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면, 결정론은 거짓이다.

 - 어메이징 필로소피, pp.106-108

데모크리토스와 반론

‧ 데모크리토스(BC 460-370)

“자네들이 알고 싶은 것은
이 당구대 위에 모두 있다네.

이 큐볼을 치면 움직이게 되어 있는 것이
여기 있는 모든 공들의 궁극적인 운명이라네.

물리학자들은 이렇게 말하지.
모든 공의 경로는 수학적으로 결정될 수 있다고.
담배꽁초 때문에 당구대 바닥에 불만 나지 않는다면 말일세.

그런데,
그건 우주에서 원자의 경로도 마찬가지야.
자네들도 다 원자로 되어 있으니,
절대로 이 결정론자들의 춤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네.

우리는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걸세!"

“모든 사건은
과거 사건들의 상태(P)와
물리법칙(L)에 따라 발생한다.”

 - 어메이징 필로소피, pp.103-105

‧ 현대 과학의 입장

“그러나,
양자역학에 따르면
아원자 입자들은
과거에 있었던 일이나
물리법칙에 따라 움직이지 않아요."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미시 수준에서는
비결정론을 받아들인답니다.”

 - 어메이징 필로소피, p.114

2016. 11. 7.

자유의지의 네 지도

‧ 자유의지의 네 지도

① 결정론
미래에 일어날 사건은 모두
과거의 상태와
물리법칙에 따라 이미 정해져 있다.

② 비결정론
과거의 상태와 물리법칙에 따라
이미 정해져 있지 않은 미래의 사건이
적어도 하나는 있다.

③ 양립가능론
결정론과 비결정론은
논리적 모순없이 양립
가능하다.

④ 양립불가능론
결정론과 비결정론은
논리적으로 양립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 어메이징 필로소피, p.99

나는 나인가?

‧ 쥘리앵 오프루아 드 라메트리(1709-1751)

내 팔이 생물학적으로 완벽한 기계라면,
나는 여전히 나인가요?

다리는요?
내 몸통은요?

모든 걸 대체할 수 있지만
뇌는 안 될 거라고 말씀하시겠죠?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제 기계 뇌는 내 생물학적 뇌와
아주 똑같은 기능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나는 내가 아닌가요?”

 - 어메이징 필로소피, p.93.

‧ 데이비드 차머스(1966-)

기계는 의식이 없습니다.

사랑도 증오도 할 수 없고,
희망도 꿈도 없고,
무서워하거나
깊이 생각하지도 못하고,
무시하지도 못하죠.

말 그대로 ‘마음’이 없는 거예요.

그러므로 내 생각에는
라메트리가 말한 기계는
‘좀비 버전’ 같은 겁니다.

 - 어메이징 필로소피, p.95.

누가 지켰나, 이 나라를?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 만세"

=====

기독교의 신이
이 나라를 지켰다고
기독교인들은 믿는다.
믿음 자체를 부정하진 않는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그러나,
하나하나 살펴보면,
"기독교의 신이 지켰다"고 하기엔,
그 자리에 있는
"정직하고 신실한 사람들"이 눈에 밟힌다.

그러므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지켰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 자리에 있는
정직하고 신실한 사람들이
지켜온 것이 아닐까?"

2016. 11. 6.

데카르트, 나는 존재한다

나는 존재한다!

- 르네 데카르트(1596-1650)

=====

내가 출발점으로 삼은 것은
내 감각을 의심하는 일이었어요.
그러고는 내 감각이라는 것이 실제로는
결코 믿을 수 없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요.
내 감각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어요?

모든 것의 토대가 되는 어떤 참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모든 감각 경험과 별개로 증명되어야만 해요.

‘나는 _____을 의심할 수 있다.’

이 문장의 공백에다
내가 믿고 있는 것들을 채워 넣었어요.
거의 모든 것을요.

거기에 어떤 것을 넣어야
문장 전체가 참이 되는지를 알아보았어요.
즉 거의 모든 것을 다 의심해본 거지요.

그리고
그 사실을 부정함으로써,
전체 문장을 모순으로 만드는
단 하나의 믿음을 찾아냈어요.

‘나는 존재한다!’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내가 지금 의심하고 있다면,
그런 나는 반드시 존재해야만 하는 거에요.

뭔가를 의심한다는 것은,
의심하는 자의 존재를 상정하지 않으면 불가능해요.
여기서 바로, 내가 존재한다는 결론이 나오지요.

내가 가졌던 모든 믿음을 하나하나 검토한 결과
나는 확실한 그 무엇을 찾아냈어요.
감각에 의존하지 않고도 참인 믿음을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Cogito, ergo sum)

 - 어메이징 필로소피, pp.48-49

-----

데카르트는 소문처럼
학자들의 전용어인 라틴어로
“Cogito ergo sum”이라고 하지 않았고,
당시에 학자들이 상스럽다고 여겼던
보통 사람들의 프랑스어로 『방법서설』을 쓰며
“Je pense donc je suis”라고 했습니다.

학자들은 못 알아들어도
일반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러나 말이 그만 앞뒤가 뒤바뀌었습니다.
다들 아시잖아요,
있으니까 생각하지,
생각하니까 있을 수는 없잖아요.

 - 전헌, 『다 좋은 세상』, pp.92-93

2016. 11. 4.

짜증 #2

어둠의 영이
대한민국을 흔들고 있으니,
깨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권세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

아,
답 없다.
노-답이다.

.
.
.

기도해야지.
정신차리라고.

누구 탓으로
돌리기 참 쉽다.

이건 타고난 거야.
천성이야 정말...

짜증 #1

그런데
바사 왕국의 군주가
이십일 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
(단 10:13)

=====

설마 이 구절을 근거로,
악한 영이 대한민국을 흔들고 있다는 말을
들을 줄이야...

미치겠다...
한국 교회, 다 그런건 아니겠지...
우리 교회만 그런 거겠지...

-----

대통령이
기독교인이면
아무 문제 없나?
(없었나?!!!!)

왜 항상 기독교인들은,
문제를,
이런 식으로 보는 거지?

짜증나 미치겠다...

2016. 11. 3.

동성애



















앨런 튜링(1912-1954)은
동성애 혐의로
"감옥에 가는 대신 화학적 거세를 받아들였다."

.
.
.


동성애는 범죄였군요.

어메이징 필로소피

2016. 11. 1.

개혁주의

"개혁된 교회는
계속 개혁하는 것은 맞지만,
'교리는 이미 완전하게 개혁되었기에',
개혁된 교리를 또다시 개혁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맞춰가야 하는 것입니다."

 - A 교수의 강의 중에

=====

한국의 개혁주의는,
16-17C에 개혁된 내용을 다루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개혁'을 다루지 않습니다.

이들이 말하는 '개혁'은
사실상 그때 완성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개혁을 이야기해도,
그것은 개혁주의자들이 말하는 개혁이 아닙니다.

.
.
.

"개혁"이라는,
좋은 단어를 갖다 쓰긴 하지만,

이제 그 단어는
그저 버릴 단어일 뿐입니다.

2016. 10. 29.

어느 쪽인가요?

누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인가요?

=====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선을 행하지 않는 사람과,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지만,
선을 행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두 사람 중
누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인가요?

2016. 10. 28.

인간 모세와 유일신교

모세는 이집트인이었다!
유대교의 근원은 이집트 종교였다!
이 종교의 출발은 아멘호테프 4세였다!
이 종교는 유일신교이며, 할례를 행한다!

=====

라고 프로이트가 쓴 책을 읽고 있습니다.
재밌습니다ㅋㅋㅋ

.
.
.

그런데 결국 보면,
"인간이 만든 종교"네요.

무언가에 신성을 부여하고,
그리고 숭배하고,

참 대단한 '인간님'입니다.

인간 모세와 유일신교

2016. 10. 27.

뭐가 선인지

교회의 선함과
세상의 선함을
구분 짓는 사람들에게.

=====

성경 없어도.
레위기 없어도.
산상 수훈 없어도.

뭐가 선인지 다 안다.

누가 칭찬을, 욕을 먹을까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껜 칭찬 받고,
세상에는 욕을 먹을까?

=====

만약 그렇다면,
율법의 기준은
일반적인 기준과
다르다는 것이다.

누가 세상에서 욕 먹나?

뻔한 거 아닌가?
악행, 불법, 범죄 등등

누가 세상에서 칭찬 받나?

당연한 거 아닌가?
용서, 사랑, 자비, 선행 등등

.
.
.

그렇다면,
하나님껜 칭찬 받는자는,
세상에서 칭찬 받는자여야 한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그래서 하나님껜 칭찬받지만
세상에는 욕 먹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한다면,

일단,
정상이 아니라는 것은 알겠다.

율법은 무엇을 요구하나?

하나님의 율법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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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만 봐도 기도하라는 건 못 찾겠다.

밥 먹으려면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움직이십니다.
라는 글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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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그래서 기도하라는 건가?
그래서 바라보라는 건가?

그런 신념 아래
말하는 거라면 이해는 된다.

그게 그들의 신앙이라는 것이겠지.
어쩌면, 그게 정통일 것이고.

<뭐, 난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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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으려면
니가 숟가락을 들고
밥을 퍼서
입에 넣어야지

가만히 기도하고
꿈쩍도 안하고 있는데
저절로 입에 밥이 들어 오나?

미친나?

신학과 행함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것
둘 중에 우선은 무엇일까?

보통은 '아는 것'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탈무드 현자들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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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과 모르는 것
구약이나 후기 유대교는 신학을 별로 발전시키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구약에서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은 유일한 신학적 도그마로 기록되어 있지만, 하나님이 무엇을 하는지, 누구인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아모스 이후 등장한 대다수 위대한 예언자는 하나같이 하나님의 행위, 하나님의 계명, 하나님의 보답과 형벌에 관해 이야기할 뿐, 하나님을 고찰하는 데 몰두하지도 않았고, 그것을 권장하지도 않았다.

6. 탈무드에 기록된 유일한 신학(교리) 논쟁
탈무드에는 바리새인과 사두개파가 벌인 신학(교리) 논쟁이 있다. 바리새파는 부활에 대한 믿음이 구약에 바탕을 둔다고 주장했지만, 사두개파는 이를 부정했다. 사실, 구약이 부활의 교리에 관한 가르침을 주지 않는다는 사두개파의 견해는 정확했다. 그런데, 이 논쟁이 신학(교리) 논쟁으로서 유일하다.

7. 탈무드의 주된 관심
탈무드의 현자들이 주로 문제를 삼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아니다. 유대교 전통에서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행위를 본받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너희 조상이 나를 버리고 내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라고 하는 [렘 16:11]에 대한 탈무드의 주석《페시타 드라브 카하나(Pesikta de Rav Kahana)》을 보면 이렇게 말한다. “그들이 나를 버리고, 내 율법을 지키기만 했더라도 좋았을 텐데.”

이것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떠나기를 바랐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양자택일해야 할 경우, ‘하나님을 믿는 것’보다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뜻이다. 즉, 주석자들은 유대인이 ‘율법을 지키는 것’이 결국 ‘하나님에게 돌아가는 길’이라고 보았다.

 - 에리히 프롬,  『너희도 신처럼 되리라』, pp.36-49.

우상 숭배란 무엇인가

"우상 숭배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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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우상 숭배를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구약의 수많은 학살은
단순히 다른 신을 섬기는 자들을 향한
정당한(?) 심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배워왔구요.

그런데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단순히 '다른 신을 섬기기 때문에'
심판을 행한다라고 하기에는,
심판 받는 자들의 공통점이
전혀 다른데 있는 듯 보였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하나님을 섬기는 자나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자나
심판의 대상이 되었을 때에는,
<그들의 악함, 악행, 범죄함> 때문이었습니다.

결코, [평화를 사랑하고, 이웃을 돌보고,
자비롭고, 선량한]데도 불구하고
심판의 대상이 된 경우를 못 봤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우상 숭배"가 무엇인지 질문하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인지,

아니면,
(에리히 프롬의 말처럼) 인격을 포기하는 것인지,

"인간은 자신의 열망을 우상으로 변형시킨다. 인간이 무기력해질수록 우상은 더욱 강력해진다. 인간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성장을 멈춘다. 예언자들은 우상숭배를 자기학대와 자기비하로 규정짓는다. 우상숭배는 필연적으로 자유(自由), 자주(自主)와 양립할 수 없게 된다."(『너희도 신처럼 되리라』, pp.49-60)

아니면,
다른 건지...

2016. 10. 26.

나는 믿는다.

나는 "인과응보"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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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린 대로 거둔다가 진실임을.

반드시 그렇게 될 것임을.

.
.
.

선한 사람은 그 마음속에
선한 것을 쌓았다가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마음속에
악한 것을 쌓았다가 악한 것을 낸다.

왜냐하면 사람은
그의 마음속에 쌓여 있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 쉬운성경, 누가복음 6장 45절

범죄자의 처벌에 대하여

범죄자의 처벌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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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화라는게 범죄자들을 다루는 방식에 영향을 끼쳐서,
범죄자들이 희생자보다 결과적으로 더 나은 대접을 받고 있지..
범죄자 스스로 범죄자 수준의 대우를 받지 않으려는 것이지만..
하지만 너와 나는 예외야.. 우린 그런 것과 상관이 없어..
우린 뭐랄까... 더 오래된, 원초적인 방식을 따르지..

문명화된 사람들이 못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야.
나는 몇번이나 카터 형사에게 자네들을 처리해주겠다고 했지만,
그녀는 언제나 그걸 거부했어..
문명화의 표본 그 자체였지..

카터는 날 좋아하지 않았지만, 난 그녀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네.
그녀가 내 목숨을 살려준 빚도 있고..
근데 자네가 그녀를 죽여버렸어..
그래서 내가 그녀에게 진 빚을 갚으려면..
자넬 죽여야 한다는 이야기야, 시몬스 경관

- person of interest s03 ep10, Elias -

바램

"정신 좀 차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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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봐도 극악 무도한 사람 A와
누가 봐도 선하고 착한 사람 B가 있는데,

A는 예수 믿어 천국가고
B는 예수 안믿어 지옥간다는

그런 멍청한 이야기는
이제 그만 했으면 좋겠다.

"정신 좀 차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