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것
둘 중에 우선은 무엇일까?
보통은 '아는 것'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탈무드 현자들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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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과 모르는 것
구약이나 후기 유대교는 신학을 별로 발전시키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구약에서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은 유일한 신학적 도그마로 기록되어 있지만, 하나님이 무엇을 하는지, 누구인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아모스 이후 등장한 대다수 위대한 예언자는 하나같이 하나님의 행위, 하나님의 계명, 하나님의 보답과 형벌에 관해 이야기할 뿐, 하나님을 고찰하는 데 몰두하지도 않았고, 그것을 권장하지도 않았다.
6. 탈무드에 기록된 유일한 신학(교리) 논쟁
탈무드에는 바리새인과 사두개파가 벌인 신학(교리) 논쟁이 있다. 바리새파는 부활에 대한 믿음이 구약에 바탕을 둔다고 주장했지만, 사두개파는 이를 부정했다. 사실, 구약이 부활의 교리에 관한 가르침을 주지 않는다는 사두개파의 견해는 정확했다. 그런데, 이 논쟁이 신학(교리) 논쟁으로서 유일하다.
7. 탈무드의 주된 관심
탈무드의 현자들이 주로 문제를 삼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아니다. 유대교 전통에서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행위를 본받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너희 조상이 나를 버리고 내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라고 하는 [렘 16:11]에 대한 탈무드의 주석《페시타 드라브 카하나(Pesikta de Rav Kahana)》을 보면 이렇게 말한다. “그들이 나를 버리고, 내 율법을 지키기만 했더라도 좋았을 텐데.”
이것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떠나기를 바랐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양자택일해야 할 경우, ‘하나님을 믿는 것’보다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뜻이다. 즉, 주석자들은 유대인이 ‘율법을 지키는 것’이 결국 ‘하나님에게 돌아가는 길’이라고 보았다.
- 에리히 프롬, 『너희도 신처럼 되리라』, pp.3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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