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 31.

본질은

[도덕경]
한번을 다 읽어본 적이 없지만,
몇몇 기억에 남는 구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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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이 뭔가'라는 질문을 던졌더니,
내 안에서 나온 답이 바로 이 구절이다.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본질을 뭐라할 수 있을까?
도덕경 1장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다.

<중묘지문>

문성재 선생은 이렇게 번역했다.

"'도'는 온갖 오묘한 조화들을 다 만들어 내는 문인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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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스승님께서 가르쳐주신 것이 생각난다.

"본질은, '창조성'이야"

2017. 1. 30.

구원이 뭐죠?

그런데,
구원이 뭐죠?

=====

1.
태어나기도 전에,
신의 주권으로,
천국행을 선택받은 것으로,
엄밀하게 말하자면
이 땅에서의 행위와 상관없다.

2.
아담의 후손이기에
태생적 죄인으로
멸망의 자식이나
예수의 속죄 죽음으로
죄 값이 치뤄져서
멸망하지 않게 되었다.
단, "예수를 믿지 않으면"
이 효과를 받지 못한다.

3.
예수를 믿으나,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으면,
멸망하지는 않지만,
부끄러운 구원을 받는다.

4.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고 싶지만,
성령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늘 기도하며
신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

5.
예수의 죽음은 만인을 위한 죽음으로
그를 믿던 믿지 않던 간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을 원죄의 굴레에서 벗겼다.
따라서 이후의 결과는 본인에게 달렸다.

6.
예수가 부활했는지 어쨌는지는 모른다.
다만, 그가 "해방"을 선포했고,
"사람 답게 사는 길"을 제시했다.
그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 사는 것이
바로 구원받은 삶이다.

7.
다 필요없다.
난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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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가 맞을까요?

답 없는 길

어떤 던전을 보고
문득 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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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가도 구원 못 받을 수 있고.
예수 믿어도 구원 못 받을 수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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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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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으로,

교회 안가도 구원 받을 수 있고,
예수 안믿어도 구원 받을 수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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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할 순, 없죠?

2017. 1. 28.

N.EX.T, The Hero

The Hero, N.EX.T

눈을 뜨면 똑같은 내 방
또 하루가 시작이되고

숨을 쉴뿐 별 의미도 없이
또 그렇게 지나가겠지

한장 또 한장 벽의 달력은
단 한번도 쉼 없이 넘어가는데

초조해진 맘 한구석에선
멀어져가는 꿈이 안녕 말하네

나 천천히 혼자
메말라가는 느낌 뿐이야


언덕 넘어 붉은 해가 지고
땅거미가 내려올 무렵

아이들은 바삐 집으로가
TV앞에 모이곤 했었지

매일 저녁 그 만화안에선
언제나 정의가 이기는 세상과

죽지않고 비굴하지 않은
나의 영웅이 하늘을 날았지

다시 돌아가고픈
내 기억속의 완전한 세계여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영웅을 맘에 갖고있어

유치하다고 말하는건
더 이상의 꿈이 없어졌기 때문이야

그의 말투를 따라하며
그의 행동을 흉내내보기도해

그가 가진 생각들과
그의 뒷모습을 맘속에 세겨 두고서

보자기를 하나 목에 메고
골목을 뛰며 슈퍼맨이 되던 그때와

책상과 필통안에 붙은
머리 긴 록 스타와 위인들의 사진들


이제는 나도 어른이되어
그들과 다른삶을 살고 있지만

그들이 내게 가르쳐준 모든것을
가끔씩은 기억하려고해

세상에 속한 모든일은
너 자신을 믿는데서 시작하는거야

남과 나를 비교하는것은
완전히 바보같은 일일뿐이야


그대 현실앞에 한없이 작아질때
마음 깊은곳에 숨어있는 영웅을 만나요

무릎을 꿇느니 죽음을 택하던 그들

언제나 당신마음 깊은곳에
그 영웅들이 잠들어 있어요


그대를 지키며, 그대를 믿으며

2017. 1. 23.

신이 했습니다?

이동진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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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시대에 경제 계발은
박정희의 능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구석 구석에서 피땀흘린
국민들의 수고에 의한 것'이다."

라는 설명을 듣고 문득 떠오른 생각은,

"이 시대에도 망하지 않고
여전히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하셨습니다'가 아니라,
'구석 구석에서 성실하게
진실하게 수고하는 국민들에 의한 것'이다."

.
.
.

여러분 생각은 어떠세요?

저는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는 구호가
구체적으로 보아야 하는 사람들의 애씀을
덮어버린다고, 가려버린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구호를 싫어합니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대한민국 만세?"

혹자는 이렇게도 말합니다.

"이 나라가 망하지 않은 이유가
다 하나님의 은혜 아니겠냐"고.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최전방에서
자신을 불태워가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수고와 애씀이
가정을, 사회를, 국가를, 세계를
유지시키고 있다고 믿습니다.

2017. 1. 22.

성도의 특징

성도의 특징은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가르침을 지켜 행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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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태복음 28장 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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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방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르겠지요.

어쩌면
예수가 보여준 길은
1세기 그 당시 사람들에게
진정한 의미에서
복음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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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갈 길이 보이지 않는 시대,
막막하고 암울했던 사람들에게

걸어갈 길을 보여준,
살아갈 길을 보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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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

누구의 길이 옳다고,
누구의 길이 틀렸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무구한 역사 속에
굵직한 길을 낸
붓다나 예수에게

당신의 길은 옳았고,
당신의 길은 틀렸다고,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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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념에서 비롯된 폭력

폭력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신념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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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폭력의 문제가
"천국 가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라는
신념에서 비롯되었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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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신념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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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게는,
"예수천당"이라는 명제를
포기하면 된다.

하지만,
이 명제는 그들에게는
일종의 마지노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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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복잡해진다.
맥주가 땡긴다.
아내님으로부터 금주령이 내려왔다.
마시지 못한다.
머리가 복잡해진다.

억지로 교회 보내는 이유

애들이 교회 가기 싫다는데
억지로 끌고 가는 모습,
교회에서 자주 보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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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주장은 스스로 강화된다.

"애들이 어렸을 때,
교회 가기 싫다고 해서
내버려 뒀더니 계속 안가요.
그때 때려서라도 데려갔어야 하는데...
후회합니다."

이런 간증(?)은 듣는 이들로 하여금,
나중에라도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때려서라도 데려가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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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애들이 싫다고 해도
억지로 데려갔어요,
보세요 지금도 잘 다니고 있죠?"

이런 간증(?) 역시 동일한 효과를 가진다.

그래서 결국은
"애들을 어떻게든 교회 데려가야 한다"라는
주장은 강화되고 합리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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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을 해 본다.

"왜 이렇게 교회를 데려가려고 할까?"
"왜 마음대로 하게 둔 것을 사무치게 후회할까?"

내가 경험한 교회에서의 답은 아주 분명했다.

"교회 가야지 구원을 받죠."
"예수 믿어야 천국 가죠."

이러한 폭력은
자식을 교회 보내기 위해 취하는
사실상 최후의 수단인 것이다.

무엇을 위한?
"자식을 천국 보내기 위한"

부모의 입장에서는 사실상,
"자식이 '살고 죽는 문제'인 것이다.

자식이 죽고 사는 문제 앞에서
뭐가 더 중요하겠는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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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제가 내린 결론은 이겁니다.

"예수천당 불신지옥
이 신념이 원인이다."

2017. 1. 19.

아론의 송아지

아론의 송아지를 읽고

"이건 사서 꼭 읽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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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점

1. 진짜 쉽다.

2. 비유가 탁월하다.

3. 주류 과학의 가치를 보여준다.

4. 사이비 과학의 오류를 잘 짚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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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

1. 신앙을 접목하는 순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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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1. 결국은 저자의 신앙고백이 담긴 신앙서적이다.

2. 그러나 과학서적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동성애 = 성중독?

질문이 있습니다.

동성애가
성중독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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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생각은 어떻냐구요?

동성애가 성중독이면
이성애도 성중독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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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권 목사님의 글은 필독해야죠.

믿음과 율법

아주 명확한 지적이다.

믿음은 신이 주면서,
율법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은 주지 않는다고?

이런 모순 앞에 정직해져야한다.
신앙은 그런게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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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완섭

구약의 율법을 100%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율법을 지켜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고,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것도 100% 믿을 수는 없습니다. 아무도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믿게 해주셔야 믿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율법을 100% 지키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게 해주실 수 없습니까? 믿는 것은 하나님께서 해주시고, 율법준수는 해주지 않으십니까? 그럼 하나님께서는 왜 율법을 주면서 언약을 맺으셨습니까?

더구나 믿는다는 사람들을 보면 100%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니, 단 1%도 믿지 않으면서 믿는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나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율법과 언약준수는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 것이고,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교리는 사람들이 해석해서 교리로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만든 교리는 철저히 믿으면서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철저히 무시하는군요.

동성애(안 vs 이)

이: 동성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안: 동성애? 그 주제는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성적인 정체성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것은 우리가 논쟁할 가치... 논쟁을 해가지고 사회 문제화 시키면 안됩니다.

이: 논쟁할 필요도 없다 이거는? 인권의 문제니까?

안: 네

이: 기독교 단체의 표가 두렵지 않으세요?

안: 아닙니다. 기독교인들도 기본적으로 그것에 대해서 종교적 신념이 있다 할지라도 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각각의 인권에 대해서는 그렇게 얘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박원순 시장이 서울시 인권조례 만들었다가 동성애 문제 기독교 단체가 워낙 반대해서 쑥 빼버렸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안: 서울에는 기독교 단체...의 항의들이 많았나 보죠 충청남도에서는 특별히...

종교적인 교리든 이념이든 다 상식적으로 우리가 현실적으로 그러한 사람들의 다양한 태도들에 대해서 그 누가 그 사람들에 대해서 손가락질 할 권리가 아무도 없습니다. 그것은 종교나 이념이나 국가 어떤 논리로도 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각각의 정체성과 그들의 개성에 대해서 재단을 하거나 뭐라할 권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 문제에 대해서는 철저히 리버럴입니다.

2017. 1. 13.

성경 지리 상식: 요르단

성경 지리 상식: 요르단편 김동문 선교사님

아래의 목록은 요르단과 성경, 성경과 요르단을 연결하는 질문들입니다. 방문자는 물론이고 방문하셨거나 방문하지 않을 분들도 함께 풀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각 질문에 대하여 ‘예’, ‘아니오’를 스스로 생각하고, ‘예’나 ‘아니오’라고 답한 그 이유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1. 헤롯 대왕은 페트라를 수도로 하던 나바트 왕국의 왕족이었고, 그의 아들 분봉왕 헤롯(헤롯 안티파스)는 나바트 왕의 딸(공주)을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2. 사도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예수님을 만나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아라비아 페트라)로 불리던 페트라로 향했습니다.

3. 페트라는 출애굽 당시의 에돔왕국의 수도였습니다.

4. 모압은 목축하기에 좋은 땅, 푸르른 초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5. 모압 평지 - 엘리야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승천했음에도 제자들은 돌풍에 휩쓸려 사라진 것으로 보고 그의 시신을 찾아다녔습니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그렇지만 옛날에 광야에서 돌풍이 자주 발생하여 인명 피해가 있었던 때문입니다.

6. 모압 평지 - 출애굽 당시 모압 평지에 도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싯딤 골짜기에 머문 것은 여리고 적군을 두려워한 까닭이었습니다.

7. 모압 평지 - 세례 요한의 활동 무대는 이스라엘 여리고 주변의 유대 광야가 아니라 모압평지였습니다.

8. 모압 평지 - 세례 요한이 먹은 메뚜기는 쥐엄나무입니다. 그 쥐엄나무는 오늘날 암만 시내 곳곳에 가로수로 심겨져 있습니다.

9. 모압 평지 - 세례 요한이 입은 낙타 가죽옷은 당시 유대인들에게 금기시되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낙타 고기를 먹었습니다.

10. 모압 평지 - 예수님은 요르단쪽에서 세례 받으시고, 요단강 건너 (오늘날 이스라엘의) 유대 광야에서 복음을 전파하시기 시작했습니다.

11. 요단강은 매년 봄 철 이후에 3개월 안팎 범람하곤 했습니다. 겨울철의 강설량과 강우량에 따라 범람 수위는 달랐지만 상습적인 침수와 범람이 이어 졌습니다.

12. 요단강은 황천(黃泉)입니다. 그 흙탕물 요단강에 피부질환이나 문둥병 걸린 사람이 몸을 담그면 몸이 깨끗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합니다.

13. 세례 요한에 의해 요단강 지역에서 회개의 세례 운동이 전개된 시기는 봄철이 아닙니다.

14. 사해 - 갈릴리는 받은 것을 나눠주기에 살아있고, 사해는 받기만 하기에 죽은 바다가 아닙니다. 갈릴리 호수는 상부 요단강 물을 받아서 하부 요단강으로 흘리는 정도지만, 사해는 자신을 증발시켜 각종 미네랄과 소금, 유기물을 만들어내는 희생의 샘플일수 있습니다.

15. 사해 - 끊임없이 거저 받은 것의 일부를 나눠주는 갈릴리의 삶과 가진 것을 온 몸을 증발시켜 생명을 제공하는 사해의 헌신 중 사해가 더 헌신적입니다.

16. 사해 - 맛을 잃은 소금도 제 몫을 다했습니다. 맛을 잃은 소금은 불순물이 많은 순도가 낮은 소금을 말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대리석 바닥 같은 겨울철 눈이 내리고 빙판이 생길 때 눈을 녹이고 미끄러움을 줄이는데도 불순물이 많은 소금 즉 맛을 잃어버린 소금을 사용했습니다.

17. 사해 - 사해는 전혀 교통로로 사용되거나 유람선 같은 것도 있었습니다. 구약시대에도 사해 횡단을 가장 빨리 요단강 서편과 동편을 오가는 길이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헤롯왕의 경우 요단강 서편과 동편을 배를 이용하여 왕래했고, 요단강 좌우편에 4~5개 정도의 선착장이 발굴되었습니다.

18. 사해 평지의 5개 도시, 소돔 고모라 스보임 모두가 요단강 동편에 자리했습니다. 소돔 고모라 멸망사건 당시 다른 3개 도시국가들도 다 망했습니다.

19. 최초의 중동전 장소는 사해 동편 지역입니다.

20. 소알 성의 뜻은 ‘작은 성’이라는 뜻도 있었지만, 설탕이 재배되는 ‘설탕 도시’라는 의미도 지녔습니다.

21. 암몬 지방은 산지를 중심으로 이뤄져있습니다.

22. 기드온과 300용사는 요르단 암만 지역에까지 들어왔습니다.

23. 데가볼리와 분봉왕 헤롯이 다스리던 요단 동편은 베레아입니다.

24. 데가볼리 도시들 중 다수가 요르단에 있는데 가다라, 거라사, 펠라, 암만(필라델피아) 등이 있습니다..

25. 헤롯은 물 좋은 곳만 찾아 다녔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물은 온천수도 포함됩니다.!

26. 헤롯과 예수님의 길은 달랐습니다.

27. "양은 선하고 염소는 악하다. 양 같은 신자가 되라." 이 말은 틀린 말입니다.

28. 양은 붙어 다니기를 좋아하고 염소는 독립적으로 움직이기를 좋아합니다. 섞어 키우는 것이 서로에게 도움이 됩니다.

29. ‘양털같이 희리라’는 이사야의 표현은 적절하지 못합니다. 스위스 양 같은 양털을 가진 양은 중동에 없기 때문입니다.

30.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압니다.

31. 목자는 모든 양들을 일일이 상대하지 않고 그중 지도자 양들을 통제하여 다른 일반 양들을 이끕니다.

32. 양과 염소를 구별하는 것은 누워서 떡먹기입니다.

33. 들에서 양을 치는 시기는 겨울철이 아닙니다.

34. 예수님은 최소한 공생애 기간 중 10개월 정도를 요르단 지역을 오가셨습니다.

35. 예수님은 세례를 통해 인간으로서 가장 낮아질 수 있다는 그 한계까지 낮아지셨습니다. 요단강 하류는 지상에서 가장 낮은 사해와 수면이 거의 일치합니다.

36. 브올의 아들 발람 선지자의 고향은 요르단의 얍복 강변의 한 마을이었습니다.

37. 엘리야의 고향은 요르단 북부 길르앗 지방의 중심부에 위치한 디셉(리스팁)입니다.

38. 거라사인의 땅과 가다라 지경은 같은 장소를 말합니다.

39. 야곱이 얍복강에서 천사와 씨름하던 당시의 나이는 최소한 97세가 넘었습니다.

40. 출애굽 막바지에 다다른, 여호수아 지도하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강이 마르기까지 2-3달 정도 기다리면 될 일 이었습니다.

41.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르단 지역에서 한 평의 땅도 분배하지 않았고, 모두 요단강 서편 가나안 지역에서 분배 받았습니다.

42. 모세는 느보산 이상의 요르단 지역을 밟아보지 못했습니다.

43. 왕의 대로는 말 그대로 왕만 다니던 고속도로였습니다.

44. 산위에 있는 동네는 숨겨질 방법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집이나 마을은 산위에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45. 반석 위에 세운 집에서 말하는 반석은 석회암입니다. 요르단과 팔레스타인 지역의 대부분의 산지는 석회암 산지가 많습니다.

46. 페트라는 예수님때 가장 유명했던 난공불락의 요새도시였습니다.

47. 베드로에게 주님은 페트라같은 견고한 믿음과 새로운 신앙공동체(교회가 페트라같이 듬직한 피난처가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48. 공중의 새는 독수리가 아니라 까마귀를 말합니다.

49. 다윗은 우리야를 죽임에 너무도 치밀했습니다. 다윗 당시의 교통수단은 도보 여행, 나귀, 말, 낙타 등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령은 말을 이용할 수 있었는데, 우리야를 죽이기 위하여 다윗은 자신의 친서를 원정군 사령관 요압에게 보내는 전령의 역할을 맡기고 말을 태워 보냈기 때문입니다.

50. 그런데 말은 군사용, 낙타는 장거리 여행용 경비행기급, 나귀는 자가용급에 해당했습니다.

51. 요단강 건너 세겜으로 이동한 야곱의 행로는 정상적이었습니다.

52. 지계석과 야곱 등이 쌓은 돌 단은 같은 의미였습니다.

53. 동방의 욥의 마을 우스는 요르단 남부입니다.

54. 헤롯 왕은 요단강 동편 요르단 지역에 많은 요새와 휴양지를 건설했습니다.!

55. 도피성의 위치는 주변 지역에서 접근이 용이했다는 점, 자체적으로 방어를 할 수 있다는 지정학적인 위치와 기능을 가졌다는 점 등도 고려되었다. 도피성은 오늘날의 교회에 안겨주는 시사점이 많습니다.

56. 길르앗의 염소떼는 정말 아름답습니다..

57. 들의 백합화는 붉은 색 아네모네입니다.

58. 무화과나무는 열매가 맺히고 그리고나서 잎이 무성해집니다.

59. 로뎀 나무는 두 종류인데, 사막 기후에 서식하는 로뎀나무는 싸리나무로 그리 크지 않습니다!.

60. 빈 들의 마른 풀은 죽은 것처럼 말라보일 뿐 물만 공급되면 푸르름이 가득해집니다.

61. ‘광야에 대로가 있어’라는 성경 본문에서 대로는 불특정한 장소가 아닌 이집트에서 요르단을 거쳐 시리아 등지로 연결하던 왕의 대로나 동부 아라비아 지역과 지중해로의 연결을 돕던 대상로 같은 쉽게 연상할 수 있지만 특정한 대로를 의미합니다.

62. 바울은 그의 회심 이후 페트라(아라비아 페트라)로 갔는데 그 이유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바울이 아라비아를 택한 이유는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FF 브루스는 그의 책에서 이것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63. 모세가 지팡이로 바위를 쳐서 샘물을 낸 것이 가나안 입국 금지 사유가 된 것은 하나님이 엄하셔서 그런 것입니다.

64. 여호수아의 초기 공약(삼일 안에 가나안 땅에 들어간다!) 남발과 그로 인한 위기가 있었습니다.

65. 정탐꾼은 정탐도 못하고 숨어 있다가 4일째 되는 날 돌아왔습니다. 그로 인해 여호수아는 위기를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66. 모세는 요단강 동편 이스라엘 백성들이 분배받은 모든 지역을 직접 점령했고 다 보았습니다. 그의 영안이 열려있었기 때문입니다.

67. 기드온이 숙곳과 브니엘 지도자들을 괴롭히느라 사용한 가시는 봄철에 그 주변 들녘에 많이 자라는 가시 많은 관목의 하나입니다..

68.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후 출애굽 여정은 모세의 장인 이드로 집안 사람들인 겐 족속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69. 나바트 왕국은 로마 제국과도 힘 겨루기를 할 수 있었던 2세기 초 멸망하기 까지 중동최강의 왕국이었습니다.

70. 모압 들녘에서는 지금도 손으로 추수합니다.

71. 유기농의 원조는 모압 농법입니다. 마다바 평야 같은 곳을 여행하면서 유목민들에 주목하면 알 수 있습니다.

72. 도시가 세워지려면 충족되어야할 조건들이 있었습니다. 그 조건에는 물, 전략적 중요성(요새), 경제성 등이었습니다.

73. 말은 군사적인 목적, 전령 등의 역할에 사용되거나 군 지휘관들이 군사 작전을 위하여 사용했습니다. 다윗에 의해 군대 총사령관 요압 장군에게 서신을 전달하라는 명령을 받은 우리야 장군은 도보로 암만까지 왔을까요. 아니면 말을 사용했을까요.!

74. 예수께서 나사로가 죽어간다는 말을 전해듣고 그 계시던 곳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에 사흘을 더 머무셨다. 예수님이 매정해보입니다. => 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지 않았을까요?

75. 모압 언약을 베푼 곳과 비느하스 사건 현장은 모두가 (모압) 들녘이었습니다.

76. 요단강 물이 갈라짐은 세례 사건입니다. 출애굽과 비교한다면, 홍해 도하 사건을 완전 재현하는 것이었습니다.

77. 요단강 물이 갈라짐은 기적입니다. 그런데 요단강 도하 지점과 물이 멈춘 장소가 직선거리로 30킬로미터 안팎이나 떨어져 있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습니다.

78. 엘리야, 엘리사, 입다 등은 모두 요르단의 길르앗 지방 출신입니다..

79. 요르단은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피난처입니다.

80. 엘리사는 힘이 장사라 열 두 겨리 소를 가지고 혼자서 밭을 갈았습니다.!

81. 다윗의 압살놈(왕자)의 머리 가락이 걸린 상수리나무는 길르앗 지방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들입니다.

82. 종려나무와 대추 야자는 같은 것입니다.

83. 세례 요한은 요단 동편에서 세례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84. 세례 요한은 요단강 동편 요르단의 마캐루스 궁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것은 마캐루스나 세례 요한이 세례 운동을 펴던 장소(요단강 건너편 베다니)들이 헤롯의 관할인 베레아 지방에 속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85. 세례는 요단 강 그 한복판에서 이뤄졌습니다. 그래서 요단강이 범람하던 봄철에는 세례 운동을 하기가 힘들었습니다.

86. 광야는 불모지입니다.!

87. 에브라임 지파는 요단 서편에서 땅을 분배받았습니다. 그러나 에브라임 수풀을 요단강 동편 지역에 자리합니다.

88. 오늘날 요르단을 중심으로 사역했던 분들은 엘리야(출생과 승천), 사사 입다(출생과 사망), 세례요한(공생애의 시작과 사망), 예수님(공생애의 시작과 사망) 등입니다.

89. 요르단에 있는 강과 시내로는 요단강, 얍복강, 세렛강, 아르논강, 그릿 시내, 사해 등입니다.

90. 요르단에 있는 산과 산지로는 길르앗 산지, 에돔 산지, 모압 산지, 느보산 등입니다.

91. 요르단 지역에 있었던 나라로는 에돔 왕국, 모압 왕국, 암몬 왕국, 아모리 왕국 등이었습니다.

92. 요르단 지역을 방문하였던 이들로는 다윗, 압살놈, 기드온, 아브라함, 롯, 나오미, 예수님과 제자들, 사도 바울, 세례요한 등 이었습니다.

93. 요단강을 갈리진 사건은 성경에 세번 등장합니다. 출애굽 당시와 엘리야와 엘리사를 통해서였습니다.

94.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언약을 새롭게 선포하던 시기(11월 1일)는 한 겨울철로 눈도 비도 내리고 바람도 많이 불던 시기였습니다.

95. 다윗왕이 요압을 원정군 총사령관으로 하여 암몬 왕국의 수도 랍바 암몬 성을 공격하였습니다. 그 사건 중 "왕들의 출전할 때"는 봄철을 의미하며, 요단강이 범람 하던 시기였습니다.

96. "암몬 사람의 종 도비야"는 몰락한 암몬 왕국의 통치자였습니다. 그것은 오늘날 한국의 공무원들이 '공복'이라 일컫는 것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97. 사해는 옛날부터 주요한 교통로로 사용되곤 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헤롯 대왕이 마사다 궁과 요르단의 마캐루스 궁을 연결하는 사해 해안 선착장과 별궁을 지은 것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98. 예수님 시대 까지도 요단강 동서편을 잇는 다리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단지 나루가 있었을 뿐입니다.

99. 에돔 왕국의 대표적인 도시는 남쪽의 데만과 북쪽의 보스라였습니다.

100. 오늘날 페트라 지역은 욥기에 등장하는 욥의 친구 중 한 사람인 엘리바스의 출신지 데만이었습니다.

성경 지리 상식: 이스라엘

성경 지리 상식: 이스라엘편 김동문 선교사님

이스라엘을 무대로 일어나고 기록된 성경 본문에 대해 어느만큼 알고 있나요? 여러분들의 ‘상식’을 짚어볼 수 있는 문제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물론 많은 문제를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성경 이야기들을 떠올릴 수 있는 약간의 소재들을 모았습니다.

각 질문에 대하여 ‘예’, ‘아니오’를 스스로 생각하고, ‘예’나 ‘아니오’라고 답한 그 이유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1. [시 121:5]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에서 우편은 이스라엘의 브엘세바 남쪽의 남방 지역(네게브 사막 지역)을 나타낸다.

2. 성경의 동서남북(東西南北)은 우리말의 전후좌우(前後左右)에 해당한다.

3. <요단강 건너편>은 단순히 요단강 건너편이라는 뜻보다 고유한 지명이름으로, 오늘날 요르단의 얍복강 에서부터 사해까지의 지역을 말한다.

4. 가데스바네아에서 보냄 받은 정탐꾼들은 남방길로 행하여 산지로 올라갔다. 산지는 헤브론 산지부터 쭉 이어지는 유다 산지를 말한다.

5. 성경의 땅에서 소는 아무데서나 사육되지 않았다. 갈릴리 지방이나 유다 산지의 벧세메스 주변 등에서 많이 사육되었다.

6. 성경에서 말하는 강은 물의 수량이 아니라 사시사철 흐르는 물을 말하고, 골짜기는 폭이 중요하지 않고 산과 산 사이에 있는 공간을 말하는 것이다.

7. 성경에는 세 개의 바다가 주로 언급된다. 서해는 지중해를, 동해는 아라바 바다 또는 사해(염해)를 그리고 갈릴리는 갈릴리 바다로 불렀다.

8. 요단강은 굽이 굽이 뱀이 움직이는 것처럼 흐르는 사행천(蛇行川)이다. 그래서 자주 물이 둑에 넘칠 수밖에 없었다.

9. 예수님 시대에 갈릴리 호수 주변 지역 모두들 갈릴리 지방으로 부르지 않았다. 갈릴리 호수 동쪽은 데가볼리 지역으로 불렀다.

10. 성경에 등장하는 뽕나무는 두 종류가 있다. 삭개오 이야기에 나오는 뽕나무는 돌무화과 나무로 부르는 것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뽕나무와 다른 나무이다.

11. 요단강은 헬몬산에서 시작된 한줄기 강물로 이뤄진 강이다.

12. 엘리야는 브엘세바에서 하루 길을 더 들어간 남방 광야에 섰다. 로뎀나무 아래 누워서 잤다. 이것은 평안을 구하는 태도가 아니라 자살시도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13. 유향은 미용과 약용, 치료용으로 고루고루 쓸 수 있었다. 특히 길르앗 산지에서 나온 유향은 최고의 것이었다.

14. 밀전병 또는 밀떡은 고운 밀로 만든 빵을 말한다. 이것은 보리떡보다 훨씬 비싸고 귀한 것이었기에 서민들이 쉽게 먹지 못한 것이다.

15. 보리떡은 서민들의 음식을 말했다. 보리떡은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나 서민들을 비꼬던 말로도 사용되었다. 그 예는 [삿 7:13] "기드온이 그 곳에 이른즉 어떤 사람이 그 동무에게 꿈을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한 꿈을 꾸었는데 꿈에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으로 굴러 들어와서 한 장막에 이르러 그것을 쳐서 무너뜨려 엎드러뜨리니 곧 쓰러지더라"는 내용에서도 엿볼 수 있다.

16. [마 15:27]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는 한 여인의 고백을 보자.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부스러기가 아니었다. 당시 음식을 먹을 때 손을 사용했다. 물론 빵은 기본 음식이었다. 음식을 다 먹고 나면 입과 손에 묻은 기름을 빵을 이용하여 닦았다. 부자들은 이 빵을 던져버렸다. 품위를 유지하는 행동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것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라 부른다.

17. [마 13: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에 나오는 밭에 감추인 보화들을 발견하는 일은 예수님 시대에 종종 있었던 일이다.

18. 예수님의 씨 뿌리는 비유에 나오는 돌 짝, 가시, 옥토, '길가'는 길르앗 산지나 이스라엘 지역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자연지형이 그렇게 생겨먹은 것을 바탕으로 하신 말씀이다.

19. 예수님의 겨자씨 비유에서, '모든 씨보다 작다'는 뜻은 크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의 문제를 지적하신 것이다.

20. 예수님을 일컬어 요셉의 아들이 아니라 <마리아의 아들 예수>라 부른 것은 '호로자식'이나 '애비 없는 자식' 이상의 의미를 지닌 비난이 가득담긴 말이었다.

21. 요나가 가려고 했던 다시스는 땅 끝, 죽음의 자리였다. 왜냐하면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던 그 시대에 지중해 끝의 다시스는 낭떠러지가 있는 곳으로 믿어졌기 때문이다.

22. 요단강은 세 번 갈라졌다. 한번은 출애굽 당시 여호수아 시대에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목격한 것이다. 다른 두 번은 엘리야와 엘리사였다.

23. 요단강은 해마다 보리 거두는 4월 '쯤'이면 언제나 둑에 넘쳤다. 그렇지만 요단강 줄기마다 범람의 폭이나 깊이 등 그 정도는 달랐다. 가장 대표적인 범람 장소가 사르단 언덕 가까운 아담 읍 변방이었다.

24. 양떼와 염소떼는 이동할 때 보면 아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양떼는 떼를 지어 이동하고 염소는 각기 흩어져 이동하곤 한다.

25. 나귀의 별명은 길 찾는 명수(path-finder)이다. 목자가 나귀만 앞세워도 양떼는 나귀를 따라 이동하곤 한다.

26. '아마겟돈'은 므깃도 언덕을 말하는 히브리어가 헬라어로 번역된 지명이다. 성경 시대 특히 구약 시대에 므깃도는 지중해 길과 왕의대로 등을 연결하던 국제 교역의 중심 도로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 므깃도를 장악한다는 것은 정치, 경제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그래서 이 지역에서 전쟁이 많이 벌어졌던 것이다.

27.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는 언제나 냄새가 가득했다. 성전 제사에서 버려진 각종 동물들의 쓰레기가 타고 썪는 냄새로 가득했다. 마음 없이 드리는 제사를 두고 하나님은 향기로운 냄새가 아니라 그 냄새에 질리셨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28. 예루살렘의 냄새는 독특했다. 성전에서 수시로 드려지던 다양한 제사로 동물들의 타는 냄새 등으로 가득 찼다. 이것은 구약식으로 표현하면 향기로운 냄새였다.

29. '욥바에서 가이사랴까지'는 걸어서 4-5일 길이었다. 욥바에 머물 던 베드로가 가이사랴에 있던 로마 백부장 고넬료를 찾아가는 행위는 일제 치하에서 일본 총독부내의 일본 헌병대장의 집을 찾아가는 것 이상으로, 주변 유대인들의 눈치와 민족적인 자존심, 종교적 갈등이 생길 수도 있는 것이었다.

30. 만 20세 이상의 유대인들은 해마다 세 차례씩 예루살렘 성전을 찾아야 했다. 그런데,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을 가려면 편도 거리가 2주는 족히 걸렸다. 세 번의 명절 모두는 농번기였다. 일손을 놓고 예루살렘을 찾기 위해서는 자신이 일하지 않아도 되는 경제력을 갖춘 자여야 가능했다. 또 건강해야 가능했다. 종교적 열심이 있어야 할 수 있었다. 아무리 종교적인 열심히 있다고 하여도 돈과 힘이 따르지 않아서 절기를 지킬 수 없었던 이들이 갈릴리 지방에는 많았다.

31. 갈릴리 호수 모든 곳에 선착장이 있지는 않았다.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뱃길과 선착장이 따로 있었다. 그중 디베랴, 가버나움, 벳새다, 긴네롯(게네사렛) 등이 대표적인 포구(?)였다.

32. 해 뜰 무렵의 갈릴리 호수 주변은 그야말로 붉은 빛으로 가득 넘친다. 이런 배경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와 다시 만나셨다. 숯불로 구운 생선과 떡도 준비해두셨다. 붉은 빛! 베드로가 모닥불 곁에서 예수님을 배반했던 것을 치유해주시기 위한 예수님의 세심한 배려가 엿보인다.

33. [행 4:13] "저희가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없이 말함을 보고 그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그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베드로는 못 배운 사람으로 생각하곤 한다. 그렇지만 베드로는 경제력도 있었고, 나름 지식도 넉넉했던 사람이었다. 베드로는 로마 문화와 유대 문화 사이를 오갈 수 있었던 최소한 이중문화권 사람이었다.

34. 광야는 허허벌판만을 뜻하지 않는다. 산도 골짜기도 시내나 심지어 폭포도 있는 곳이다. 아울러 맹수도 살던 곳이었다.

35. '예루살렘으로 올라간다'는 표현은 수도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세계관(우리말로도 상경한다고 하는 것처럼)이 담긴 표현이고, 지리적으로도 예루살렘 지역이 주변 지역보다 높아서 생긴 말이다.

36.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에 나오는 예수님의 비유는, 당시 떡을 굽던 화덕을 바탕으로 한 말씀이다. 열을 더 오래보존하기 위하여 화덕 위에는 돌들을 올려두었다. 그 돌들 위에 가루 반죽을 올려두어 떡을 굽곤 했다. 그래서 떡과 돌의 이미지는 떡이 익어가는 장면을 연상시켰다.

37.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시신을 수습하여 뼈를 추려서 가문의 납골함에 넣던 풍습을 바탕으로 한 말씀이다. 즉 납골함에 뼈를 추려서 넣으라는 말씀이다.

38. 갈릴리 호수도 조수간만의 차가 발생한다. 그래서 아침녁이면 갈릴리 호수 서쪽 물이 줄어들고 밤이면 물이 차오른다. 게네사렛 선착장이나 베드로 수위권 교회를 가보면 그것을 쉽게 알 수 있다.

* 사실 확인과 생각을 위한 도움.

위의 38개의 이야기 가운데, 11번이 사실과 다르다. 요단강은 몇 개의 물 근원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리면서 합류하고 중간게 다른 지류들이 합류하거나 흩어지면서 만들어진 강이다.

입장정리

입장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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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화륜 목사님을 뵙고,
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저는 생각이 많고,
고민을 많이 하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데
에너지를 많이 사용합니다.

기독교에 입문하게 된 까닭도,
문자주의적 입장에 선 부모님의 가르침을 받아,
기록된 모든 내용이
문자 그대로의 "사실"이기에 믿었습니다.

그러나 오랜 고민 끝에,
기록대로의 사실이 아니라,
사실로 받은 "신앙"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겐 사실이냐 아니냐가 중요했기에,
사실이 아니라면,
더 이상 신앙할 필요도 없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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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저 역시도 믿는 바가 있더군요.

저는 예수를,
'우리가 신을 섬길 존재가 아닌,
신의 자녀라고' 가르쳐준 분으로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걸어갈 길이 무엇인지'
가르쳐준 분으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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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신앙을 다음과 같이 정리합니다.

1.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다.
2.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이다.
3.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이다.
4. 사람의 운명은 사람에게 달렸다.

2017. 1. 11.

일체유심조

일체유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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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이 생겨서 웃는 것이 아닙니다.
웃으니 좋은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넉넉해서 나누는 것이 아닙니다.
나누니 넉넉해 집니다.

예뻐서 사랑하는게 아닙니다.
사랑하니 예뻐 보이는 것입니다.

친구라서 믿는 것이 아닙니다.
믿으니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잘해서 칭찬 하는게 아닙니다.
칭찬하니 잘하는 것입니다.

충분해서 만족하는게 아닙니다.
만족하니 충분한 것입니다.

가능한 일이라서 시작하는게 아닙니다.
시작하니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젊기에 도전하는게 아닙니다.
도전하기에 젊어지는 것입니다.

세상이 달라지니 생각이 바뀌는게 아닙니다.
생각을 바꾸니 세상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2017. 1. 10.

신은...

신은 도와주러 오지 않는다.

자신의 다리를 움직이는 건,
언제나 자신의 결단 뿐이야.


사람이 사는 동안에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을 또한 알았도다.
(전 3: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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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대충 남한테 민폐 안끼치고
좀 좋은 일하면서
얼쑤~~ 이러면서
탱자탱자 거리며 살면 되는거 아닌가요?

.
.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누가 이기나?

내 안에 있는 선한 늑대와
악한 늑대 중에 누가 이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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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먹이를 주는 놈이 이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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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늙은 인디언 추장이
자기 손자에게
자신의 내면에 일어나고 있는
큰 싸움 에 관하여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 싸움은..
나이 어린 손자의 마음 속에도
일어나고 있다고 했습니다.

추장은 궁금 해 하는
손자에게 설명 했습니다.

"얘야,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엔
숱한 싸움이 일어나고 있단다.
두 늑대간의 싸움이란다.”

“한 마리는 악한 늑대로서...
그 놈이 가진 것은
화, 질투, 슬픔, 후회, 탐욕,
거만, 자기 동정, 죄의식, 회한,
열등감, 거짓, 자만심, 우월감,
그리고 이기심이란다."

“다른 한 마리는 좋은 늑대인데..
그가 가진 것들은
기쁨, 평안, 사랑, 소망, 인내심,
평온함, 겸손, 친절, 동정심,
아량, 진실, 그리고 믿음이란다."

손자가 추장 할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그럼,어떤 늑대가 이기나요 ? ”

추장은 간단하게
이렇게 대답 했습니다.

“그거야, 내가 먹이를 주는 놈이 이기지.”

2017. 1. 9.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

제일 먼저 생각할 것은, 누가 멸망하나요?

멸망이라는 문제는
예수의 존재 이전부터 선포되어왔던 것이니만큼
단순히 "예수를 안믿기 때문"이라고 하긴 어렵네요.

하나님을 공의의 하나님이라고 부른다면,
멸망하는 대상과 그 이유는 분명하겠지요.

"범죄" 혹은 "악행"

뭐가 범죄인지, 뭐가 악행인지 모를 수 없겠죠.

-----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어떻게 하면 멸망을 피할까요?

예수의 존재 이전부터 멸망이 선포되었고,
그때에도 해결책이 있어야 했다면,
어쩌면 해결책은 단순할지도 모릅니다.

"범죄" 혹은 "악행"을 멈춘다.

또는,
"공의"를 행하고 "선"을 행한다.

멸망이 범죄와 악행 때문이었다면,
멸망하지 않는 길은
소극적으로는 범죄와 악행을 멈추는 것이고,
적극적으로는 공의와 선을 행하는 것이겠죠.

-----

그렇다면 "독생자를 믿는다"는 것은 뭘까요?

혹자는, "그가 구원자임을 믿는다"라고 할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볼까요?

그가 구원자임을 믿는
1. 악인과
2. 선인
중에 누가 멸망하지 않을까요?

멸망의 원인이 "범죄" 혹은 "악행"이라면,
예수를 구원자로 믿는다 할지라도,
악인이라면 멸망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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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으로 생각해볼까요?
그가 구원자임을 믿지 않더라도,

"범죄" 혹은 "악"을 행하지 않고
"공의" 혹은 "선"을 행하는 사람은 어떨까요?

그 사람은 멸망할까요, 멸망하지 않을까요?
당연히 멸망하지 않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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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그렇다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뭘까요?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예수의 가르침 자체가 특별한게 아닙니다.
"범죄" 혹은 "악"을 행하지 말고,
"공의" 혹은 "선"을 행하라는게
예수의 가르침이라 생각합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그를 나의 구원자로 믿는게 아니라,
그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것이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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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오리지널스

오리지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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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보자

예레미야의 자기인식

"예레미야는 소명 보도에서 자신을
'모세와 같은 예언자'로 이해하고 있다."

앗! 그렇다면,
‘너와 같은 선지자’를 ‘예수’로 해석하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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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신 18:18)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렘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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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애경 (Sanabro Koo) 준박사님, 재밌습니다^^

#예레미야서_더_가까이_보기, p.74

바른 사과

읽어보자

사실이 아니라면

저는 그것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주장을 통하여 기독교에 들어왔습니다.

따라서 사실이 아니게 되면,
더 이상 있어야 할 근거가 사라집니다.

=====

"사실확인에서 틀려먹었으면
주장자체가 무너진다고요."

모 페친께서 달으신 댓글인데,
딱, 제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

다만, 여태까지 몸 담고 있었으니,
발을 빼더라도 한 가지는 알고 싶습니다.

"예수, 그는 무엇을 가르쳤는가?"

ps.

'그것이'가 가르키는 것은,
1. 성령잉태
2. 대속죽음
3. 3일부활
4. 40일 후 승천
5. 원죄
6. 천국과 지옥

.
.
.

등등

재해석된 것이 아니라,
액면 그대로 '사실'이라고 하였기에...

무엇을 전했나

복음서에는 수없이 많은
예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항상 궁금한 것이 하나 있는데,

"예수님은 무엇을 전하고 싶으셨는가?"

=====

전도(傳道)한다고 한다.
도를 전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전하고자 하신 도는 무엇인가?

우리나라 식으로 말하면,
'정도령이 왔다'인가?
'미륵이 나타났다'인가?

일제강점기를 상상하면,
'광복했다'인가?
'해방되었다'인가?

도대체 모르겠다.
누구 속 시원하게 알려줬으면,
참 좋겠다.

.
.
.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막 1:21)

가르치시매... 무엇을?

그런 건 없어

"나를 믿으라"

=====

막상 이런 말이 언제 나올까,
싶어 해봤더니
"내가 아는 진실"을
상대방이 받아들였으면 싶을 때 하더라.

예수님은 왜 "나를 믿으라"고 하셨을까?

천국가는 담보가 되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이 진실을 도무지 받아들이지 않아서,
답답해서였을까?

예수님이 전하고자 하는 진실은 뭐였을까?

.
.
.

"니가 생각하는 그런 건 없어~"

술 취하지 말라(김동문)

"술(에)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신약성경, 바울이 에베소 공동체에 보낸 편지인 에베소서 5:18)

술, 2천년전 중근동과 유럽지역에 포도주(포도즙 수준에서 부터 포도주 수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등급)와 맥주, 아락(주)으로 부르는 증류주 등이 있었다. 술은 일반적으로 포도주를 지칭(포도즙 - 포도주)했다.

포도주는 일반인들의 일상에서 쉽게 접하고, 어렵지 않게 소비할 수 있는 그런 음료가 아니었다. 그것은 평범한 이들은 가까이 할 수 없는 특별한 이들의 문화적 상징물이었다. 오늘날로 너무 빚대면 송로버섯이나 어떤 종류의 특별한 것들.. 먹고 사는 것도 힘겨운 이들에게 물 대신 포도주를 마신다는 것은 전혀 말도 안되는 엉터리 괴담이다.

로마 귀족들이나 권력자들의 문화적 상징과도 같았던 포도주, 포도주를 마신다는 것 자체가 어떤 특권층의 삶을 산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것은 방탕한 것이었다. 없는 이들의 눈물과 아픔을 못느끼는 이들의 술취함은 그야말로 우상숭배와 같은 것이었다.

그런 삶을 살 수도 없는 이들이 에베소서에 나온 이 편지를 들었던 이들이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에게 이런 편지를 누가 싸 보냈다고 하면, 무엇이 느껴지는지요? "여러분들 송로버섯과 샥스핀으로 배 채우지 마세요. 그것은 방탕한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2천년전 바울의 편지 에베소서 5:18절은 금주나 음주를 논쟁할 근거 본문은 아닌 것 같다.

출처

생각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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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 오면서 한참(아니 잠깐) 생각했다.

이제 난 기독교인 아니야.
그러니 기독교인에게 요구하는 조건들을 지킬 필요가 없지.

휴, 이제 좀 살겠다.
벗님들 만나면서 맘편히 술 한잔 할 수 있겠다.

아이고 좋아라.

그냥

그냥, 기독교인 하지 마세요.
그게 답인거 같습니다.

=====

기독교인 하면서,

술, 담배하고
요가도 하고 그러지 말고,

기독교인 하려면,
술, 담배 하지 말고
요가도 하지 말고
교회에서, 목사님들이 하라는것만 열심히 하세요.

어차피 변하지 않을 거고, 바뀌지 않을 겁니다.

400년 전에는 술 마시는게 아무렇지 않았는데,
400년 지난 지금 한국은 금주가 하나님의 뜻이잖아요.
신경 끄고 사는게 편하겠습니다.

지옥요?
관심 없으니, 관심 많은 님이나 신경 쓰세요.

천국요?
신경 끄고 나니 여기가 천국이네요.

물 대신 술?

물 대신 술?

=====

이스라엘에 물이 없어서
포도주를 물 대신 마셨다고?

포도는 물 없이도 자라냐?
선인장도 아니고...ㅋㅋㅋ

선악을 모른다고?

스승 曰,

내가 숙제를 낼까 하니
한명도 빠짐없이 해오기 바란다.
각자에게 살아있는 새를 나누어줄테니,
지금부터 저녁 예불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릴때까지
'죽여서' 오너라.
절대로 살려 오면 안된다.

단!
아무도,
어느 누구도 보아서는 안된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죽여서 오너라.

.
.
.

저녁 예불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리고,
한사람 한사람 새를 죽여서 들어오는데,

딱 한 사람,
평소에 놀림받던
바보제자의 모습만 보이지 않았다.

예불이 끝나고
깜깜한 밤이 되어서 돌아오는
바보제자의 손에는
살아 있는 새가 있었다.

스승이 제자들에게 물었다.

"어디서 죽였느냐?"

A: 깊은 산속에 숲에서 죽였습니다.
B: 자기 방에서 죽였습니다.
C: 숙제가 너무 간단했습니다.

.
.
.

"너는 왜 안죽였느냐?"

바보제자 曰,

스승님.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죽이라 하셨는데,
깜깜하도록 다녀도
아무도 보지 않는 곳이 없었습니다.
어디를 가보아도,

'제 스스로 보고 있었고'
새가 보고 있었고
하늘이 보고 있었고
숲이 보고 있었습니다.

=====

뭐가 선이고,
뭐가 악인가?

남들이 몰라도,
자기 자신은 안다.

기준이 모호하다고?
변명에 불과할 뿐이다.

예수 믿으면 된다고?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뿌린 대로 거둘 뿐이다.>

낙태에 대하여

읽어보자

답답함

예수 안믿어도

=====

에휴...

선의 기준이 다르다, 좋다 이거야.
그래서 왜 결론이 그렇게 나는데?

예수 믿으면,
선의 기준이 세워지나?
그거 아니잖아.

이건 그냥,
선의 기준이 모호하니까
안지켜도 상관없고,
예수만 믿으면 디즈니랜드에 간다는 거잖아.

선의 기준이 모호해도,
착한 사람은 누가 봐도 안다.
악한 사람은 누가 봐도 알고.

뻔한 걸 덮어버리고,
멀쩡한 사람 왜 지옥 보내냐?

그게 정의냐?
그게 사랑이냐?

원융무애

원융무애(圓融無碍)

=====

모든 존재의 근원적인 모습은
걸리고 편벽됨이 없이
가득하고 만족하며
완전히 일체가 되어
서로 융화하며
장애가 되지 않는다.

평화는 가능합니다

현경 교수님의 생각 공유

=====

"평화는 가능합니다."

1. 평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믿고
2. 평화를 위해서 일하고
3. 우리 자신이 평화가 되면,

평화는 가능합니다.

this is possible!

제사의 차이

구약의 수많은 제사와
예수의 유일한 제사는
성경에 따르면 분명 다르다.

=====

그런데, 질문이 하나 있다.

구약의 제사를, 원칙대로, 지켰을 경우,
그 효과는 보장되었다.
즉, "속죄"의 효과는 보장된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제사를 하더라도,
예언서 곳곳에서 하나님은
제사를 부정하고, 치를 떠시며
안받겠다고 하신다.

그들의 "범죄함" 때문이라고 하신다.

그렇다면, 예수의 유일한 제사는 어떨까?

완전하고 완벽한 제사이니,
그것으로 효과가 무조건적 효력을 발휘할까?

구약에서는 그렇게 원칙대로 제사를 드려도,
그들의 "범죄함" 때문에 안받겠다 하시며
그들에게 벌 주시는 하나님이,

신약에서는 예수의 죽음을 끝으로,
신자의 "범죄함"을 눈감아 주시는가?

쉽게 말해,
아무리 범죄하더라도,
예수 믿으면 땡인가?
과거/현재/미래의 죄가 해결되었나?

구약시대에는
'신자'가 범죄하고 속죄제를 드려도,
<그 자신이 변하지 않으면,>
속죄의 효력을 베풀지 않겠다 하셨는데,

신약시대에는
예수의 죽음이 워낙 커서,
신자의 범죄를 눈감아 주시는가?

여성의 자유

홍승희씨 발언
"저는 살인을 한 적이 없어요, 제겐 원치 않는 임신을 하지 않을 자유가 있어요"

"왜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은 사회적 문제가 되지 못할까요?"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도 제대로 구하지 못하면서, 아이 낳아서 그 아이가 수학여행 가면 제대로 살릴 자신 있습니까?"

놀라운 일

종교인이 아니라면
나의 주인은
나일 수 있겠다.

나의 주권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겠다.

오, 이런 놀라운 일이~!

불교와 기독교

불교, 기독교를 논하다

이 책에 따르면,
불교와 기독교는 매우 다르다.

저자는 두 종교의 차이를 조목 조목 나열하는데,
기독교의 특징을 잘 파악했다고 생각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불교와 기독교의 유사점에 주목하려는 시도가
왠지 허무하게 생각되었다.

그래, 다른건 다른거야.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무궁무진

하나님은 무궁무진하십니다?

=====

글쎄요, 저는,
당신의 생각이 바뀐 것이라고 생각되네요.

똑같은 것을 경험하더라도,
어제의 경험과
오늘의 경험이 다르잖아요.
그렇다고 '그것이' 무궁무진하다고 말하진 않지요.

하나님은 어떨까요?
작년에 하나님에 대해 생각했던 당신의 수준과
올해 하나님에 대해 생각하는 당신의 수준이
달라진 까닭이라고 생각됩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이 무궁무진하시다고,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는 거란 말입니다.

저는 오히려,
그렇게 말하는
당신의 생각이
무궁무진해 보여요^^

이슬람

이슬람

새로운 길을

제 생각이 틀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목사를 그만하려고 합니다.

정직하게 제 나름대로 고민한 끝에,
불가지론자요,

(복음주의 혹은 근본주의권에서 말하는 식의 신관을 포기한)
무신론자가 되었습니다.

또 변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교단 내에서는 확실히 민폐겠지요.

-----

누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실이 아니라면,
그것을 근거로 펼치는 주장은
헛소리에 불과하다.

정직하게 제 나름대로 추적한 결과,
배워왔던 대로의 '역사적 사실'이 아님을 확인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근거로 펼치는
주장과 설교 역시 헛소리에 불과하지요.

그러므로, "알 수 없다"인, 불가지론자요,
"그런 신은 아니다"인 무신론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새로운 길을 가렵니다.

어떤 믿음?

"네 믿음이 너를 구했다."

어떤 믿음일까요?

=====

저는,
용한 의사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환자의 믿음이라 생각됩니다만...

-----

당신을 믿으면,
삼세의 죄악이 용서받고,
비록 육신은 허물어지나,
영혼은 낙원에 거하며,
재림 때에 부활할 것을 믿습니다.

이딴 게 아니란 말이죠.

-----

저는 실력있는 의사를 찾아온,
환자의 "이번에는..."라고 생각합니다.

뿌린대로 거둡니다

<뿌린대로 거둡니다.>

이게 정직하게 강조되는 순간,
기독교-신자들은 제게 질문합니다.

=====

"그럼, 기독교와 다른 종교의 차이는 뭔가요?"

이 질문의 핵심은 그냥 '차이'가 아니라,
'구원에 있어서의 차이'입니다.

예수님만 구원의 길이요,
다른 길은 없다고 배웠고,
그렇게 믿어왔는데,

"뿌린대로 거둔다"하면,
지금까지 배운 것이 헛것이요
지금까지 믿어온 것이 헛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한쪽을 포기해야 합니다.

"뿌린대로 거둡니다"를 포기하고,
"예수천당"을 붙잡는 것이지요.

그게, 그들이 살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

지난 주에 제가 받은 질문입니다.

점/돈오 점/돈수

점오점수
돈오점수
돈오돈수

=====

순간이 영원이고
영원이 순간인데
점과 돈이 어떻게 다른가?

이미 아니면
영원히 아니다.

삼세(三世)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다.
.
.
.
과거라는 나의 생각만 있고,
미래라는 나의 생각만 있다.
.
.
.
나라고 할 것도 없다.
다만 나라고 고집하고 있을 뿐.

이보게

서산대사

"이보게~"

=====

이보게~
살아 있는 게 무언가?

숨 한번 들여 마시고
마신 숨 다시 뱉어내고
가졌다 버렸다 버렸다 가졌다.

그게 바로 살아 있다는 증표 아니던가?
그러다 어느 한 순간들여 마신 숨 내뱉지 못하면
그게 바로 죽는 것이지

어느 누가 그 값을 내라고도 하지 않는
공기 한 모금도
가졌던 것 버릴 줄 모르면
그게 곧 저승 가는 것인 줄 뻔히 알면서

어찌 그렇게 이것도 내 것
저것도 내 것 모두 다 내 것인 양
움켜 쥐려고만 하시는가?

아무리 많이 가졌어도
저승길 가는 데는
티끌 하나도 못 가지고 가는 법이리니
쓸 만큼 쓰고
남은 것은 버릴 줄도 아시게나

자네가 움켜쥔 게 웬만큼 되거들랑
자네보다 더 아쉬운 사람에게
자네 것 좀 나눠주고

그들의 마음 밭에 자네 추억 씨앗 뿌려
사람 사람 마음 속에 향기로운 꽃 피우면
천국이 따로 없네
극락이 따로 없다네

생이란 한 조각 뜬 구름이 일어 남이요
죽음이란 한 조각 뜬 구름이 스러짐이라

뜬 구름 자체가 본래 실체가 없는 것이니
나고 죽고 오고 감이 역시 그와 같다네.

천 가지 계획과 만 가지 생각이
불타는 화로 위의 한 점 눈(雪)이로다

논갈이 소가 물위로 걸어가니
대지와 허공이 갈라 지는구나.

2017. 1. 8.

자꾸

자꾸

=====

자기들의 신앙을 강요한다.

이해는 된다.
그 신앙만이 생명이고,
아니면 죽음이라 생각하니까.

그렇게 사는 분들, 이해는 한다.
그러나 나도 그렇게 살라고?
나는 그렇게 살기 싫다.

"예수천당 불신지옥"
이걸 선포하며 살라고?

내겐 그러고 사는 것 자체가
지옥같이 여겨진다.

그래서,
다시 한번 마음을 정한다.

"돌아서지 않으리"

.
.
.

술도 못 마시는 인생
무슨 재민가!

말도 안되는 비유

말도 안되는 비유

=====

"아이들은 부모가 함께 있다는 이유 만으로 안심하는데,
왜 신자들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것으로 안심하지 못할까?"

-----

이게 정상적인 비유라고 생각하는가보다.

눈 앞에서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부모와

다만 존재한다는 말만 있을 뿐,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고
대화할 수도 없는 신을

어떻게 같은 선상에 놓고 볼 수 있는 것일까?

-----

1세기에 살았던,
예수를 눈으로 보고
그에게 친히 배웠던 제자와

21세기에 사는,
예수를 보지도 못하고
그가 무엇을 가르치는지는
오로지 (일관성이 결여된) 사복음서에서만
볼 수 있는 우리를

어떻게 같은 선상에 놓고 볼 수 있는 것일까?

-----

심지어는,
1세기 제자들보다

21세기 우리들이
훨씬 더 유리한 입장에 있다는 주장은
제정신으로 하는 말일까?

.
.
.

성령이 내주하셔서
알려주고 인도하신다면서
저런 주장을 하는데...

가만 들어보면,
그저 기가막힌다.

2017. 1. 4.

당연한 질문

당연한 질문

=====

예수가 이것으로 책망한 적이 있나요?

1. 동정녀 탄생을 안믿어서
2. 삼위일체를 안믿어서
3. 대속을 안믿어서
4. 부활을 안믿어서
5. 재림을 안믿어서

-----

그래서 저주받을 자식이라고
지옥의 형벌이 있을거라고
하신적이 있으신가요?

.
.
.

진짜 예수는
무엇을 책망하셨고
무엇을 가르치셨나요?

2017. 1. 3.

예수의 길

교회 안 다니고
그냥 예수님 믿으면 안 되나요?

=====

됩니다.
그런데 일단,
정리를 해 볼까요?

예수 믿는다는게 뭔가요?
예수의 길을 간다는 거겠죠.

예수의 길이 뭔가요?
예수가 준 계명을 지키는 거겠죠.

예수가 준 계명이 뭔가요?
사랑하라는 것이죠.

네.
사랑하며 사세요.
그러면 교회 가지 않아도 됩니다.

-----

사랑하며 사는게,
사람답게 사는거 아닐까요?

.
.
.

와인 한병을 작심하고 마시고 있습니다.
맛있네요.

2017. 1. 2.

예수의 책망

예수의 책망

=====

집을 청소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예수는 무엇을 책망했지?"

여러 모습들이 스쳐지나가는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성전 파괴(저는 파괴라고 생각합니다) 사건도,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향한 책망도,

"나를 안믿어? 지옥갈래?"가 아니었다.

오히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이유로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이유로
사람들을 책망하셨다.

그리고 책망 뒤에는,
"그러니 나를 믿어라"가 아니라,
"그렇게 살지 말아라"였다.

-----

물론 어딘가에는 "나를 믿어라"고도 하신다.
그리고 "믿지 않음"에 책망도 하신다.
"나를 따르라"고도 하신다.
그런 부분도 있긴 있다.

하지만,
예수의 책망의 방점은,

"예수를 믿고 안믿고"가 아니라

"너도 사람답게 살고,
 남도 사람답게 살게 하라"에 있다.

.
.
.

고 나는 믿는다^^

말씀카드

말씀카드

=====

저는
말씀카드
뽑는 것이
너무 재밌습니다.

로또 같지 않나요?

^^

자기 인식

저는 중요한 것이
자기 인식이라고 생각합니다.

=====

어떤 교리가 중요하다?
어떤 고백이 중요하다?
어떤 신앙이 중요하다?
어떤 종교가 중요하다?

아니요.
교리도, 고백도, 신앙도, 종교도
그 자체로서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그러고 있다"라는
자기 인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
.

그러면 적어도,
"이렇게 믿어야 해!"
"이것만 믿어야 해!"라는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은 없을거니까요.

광장

광장

=====

12월 31일에 광장에 갔습니다.
시청에서 지하철을 내려서
광화문으로 걸어갔습니다.

"탄핵 반대!"

시청 쪽에서 외치는 소리였습니다.
수 많은 무리가 있었습니다.
저는 어리둥절했습니다.

이상하다...?

광화문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시청과 광화문 사이에 커다란 공백이 있더군요.
그리고 광화문에서는...

"박ㄹ혜 탄핵!"

광화문에서 외치는 소리였습니다.
여기엔 또다른 수 많은 무리가 있었습니다.

아...!
여기에 두 그룹이 있구나.

페북에서는 한 그룹만 보았는데,
그래서 그게 전부인 줄 알았는데,
광장에는 두 그룹이 미묘한 대치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게 현장이구나.
이게 현실이구나.

.
.
.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그른지를 떠나

자신의
신념으로 믿음으로
외치고 계신 많은 분들을 보았습니다.

갈대 같은 마음

갈대 같은 마음

=====

사임하고 여러 교회를 다니는 중입니다.
슬그머니 개척 생각이 났습니다.

그런데,
이런 제 입장을 부모님이,
친척들이 알게 되는 상황을 상상하게 되더군요.

한마디로 끔찍했습니다.

"예수천당 불신지옥"
"하나님의 절대주권"
"인간은 본래 죽어 마땅한 죄인"
"갚을 수 없는 구원의 은혜"

이것을 삶의 원동력으로 갖고 계신
부모님을, 친척들을, 생각하니,
정말 끔찍한 미래가 예상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시금 슬그머니
개척 생각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났지만,
저는 못 떠나겠습니다.

남자는 부모를 떠나
여자와 합하여 한 몸을 이룬다 하였지만,
저는 못 떠나겠습니다.

예수는 미친놈 소리를 들어가며
자신의 길을 걸어가셨지만,
저는 못 하겠습니다.

.
.
.

갈대 같은 제 마음입니다.

기원

기원

=====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새해에는 보다 행복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