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1. 25.

뻔한 놀이

"나도 모르는, 나의 세계관"
그렇지만, 가장 합리적인 세계관은
"기독교"라고 주장하고 싶은 책.

=====

이제 이 책을 마지막으로,
문자/보수주의 기독교와 관련된 책을
안 읽게 되었으면 좋겠다, 하하하.

뻔한 놀이인거 같다.

밖에 나오지 못했다면,
나도 안에서 이러고 있겠지.
그리고 밖을 보며 손가락질 하겠지.

뻔한 이야기 자꾸 들춰서,
경계만 자꾸 확인하면 뭘하나.
이제 털어버리고 길을 떠나야지.

"미련일랑 두지 말자."

갈 길이 멀다.

부활신앙과 기독교

당신은 신약성경이 분명하게 가르치는 것처럼 나사렛 예수가 죽음에서 부활했다고 믿지 않으므로 기독교적 유신론자가 될 수 없다.

 - 나도 모르는, 나의 세계관, p.68

예수의 부활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다면 기독교는 철저히 거짓이다. 그러므로 만약 유신론적 세계관을 지닌 사람이 예수가 죽음에서 부활했다는 것을 부인하거나 심각하게 의심한다면, 그는 비기독교적인 유신론적 세계관Non-Christian Theist Worldview을 가졌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 나도 모르는, 나의 세계관, p.89

=====

그렇다. 이게 기독교지.
부활을 의심하는 자는 기독교인이 아니다.

그리고 부활의 의미를
다르게 생각하는 자도 기독교인이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다.

-----

그저,
나는 나다^^

역사적 증언?

예수의 부활에 관한 역사적 증거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사복음서는 모두 예수의 부활에 대한
"목격자들의 '역사적 증언'을 제시한다."

실제로 기독교 교회는 예수가 구약성경의 예언과,
그 자신의 예견에 대한 성취로
"'죽음에서 부활했다'는 제자들의 증언"위에 세워졌다.

 - 나도 모르는, 나의 세계관, p.91.

=====

아... 머리 아파.
'역사적 증언'이 뭘까?

증언이 아니라 주장이겠지.
그런 주장을 실제로 했다는 거고.

그러니까 '역사적'이란 말은,
'실제로 주장했다'는 것이고,

'증언'이라는 말은,
'주장'이란 단어를 교묘하게 바꾼 것이지.

-----

이 책 참 웃긴다.
교묘하게,
기독교의 우월성을 주장하고 있어.

"다른 세계관들과 비교할 때 기독교적 세계관이 최상의 종합적인 설명을 해줄 수 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모든 것을 고려해 볼 때, 기독교적 세계관은 그런 설명을 해 줄 가능성이 아주 많다. 기독교는 철학적으로 풍성하고, 실존적으로 만족스러운 세계관이다."

 - 나도 모르는, 나의 세계관, pp.104-105

2016. 11. 20.

동성애?

시앙스 앙퓌즈,
"신약성경이 말하는 동성애에 대한 여섯 가지 진실"
댓글을 보다가.

=====

"성경 내부의 문화적 맥락은
일관되게 동성애에 대한
증오 및 단죄를 전제하고 있다."

-----

사실 저도 성경을 보다보면
그렇게 읽히긴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저는 성경이 '정확 무오한 유일한 법칙'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성경이 그렇게 말하건,
혹은 그렇게 말하지 않건 간에,
성경에 영향을 별로 받지 않습니다.

출 22:18 너는 무당을 살려두지 말라

제 주변에도 "박수 무당"이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그들에게 돌을 듭니까?
그들을 정죄합니까? 그러지 않잖습니까.

그저,

"성경은 이렇게 써 있구만?"

저는 이정도가 딱 좋다고 생각합니다.
진짜 고민해야 할 영역은 다른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천국과 지옥

이 정도만 살펴봐도, 근본/보수주의가 주장하는
천국/지옥설은 성립되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제는, FACT랑 무관하게 FAITH를 주장하는 것이다.

"믿음의 눈으로 보세요. 그러면 볼 수 있답니다."

이럴 땐 GG를 치는 것이다.

"그렇게 믿으세요. 저는 안믿을래요."

=====

사후세계

2016. 11. 19.

나의 일

사람이 변하는 것은,
누군가가 계기가 되어줄 수 있지만,
결국 스스로 의지를 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누가 대신 '나를 변신시켜주는 일'은 없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이, 혹은
신이 해주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늘 걸어가던 길을
이번엔 다른 길로 가겠다는
스스로의 의지가 다른 길로 가게 하고,

늘 똑같이 생각하던 것을
이번엔 다르게 바라보겠다는
스스로의 의지가 다른 생각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
.
.

누군가에게 등떠밀려 하게 되면,
계속 하려는 나의 의지가 없다면,
결국 제자리로 돌아올 뿐입니다.

2016. 11. 18.

미국 대통령 당선?

지도로 읽는다 세계 5대 종교 역사도감

아주 쉽고 간단하게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유대교, 힌두교를 다룬다.

세계 5대 종교 역사 도감

=====

그냥 술술 읽고 있었는데,
두 대목에 이르러 시선이 고정되었다.

첫째는,
WASP가 아니면
대통령에 당선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W: White
AS: Anglo-Saxon
P: Protestant

-----

둘째는,
복음파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이다.

복음파(Evangelical)의 가장 특징적인 점은
'성서를 문자 그대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진화론과 동성 결혼 등의
'성서와 모순되는 모든 주장과 행위'는 죄악이다.

레이건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
부시가 재선에 성공한 것도,
복음파의 지지를 얻은 덕분이다.

레이건은 가족의 가치를 호소하여 지지를 얻었고,
부시는 임신 중절과 동성 결혼 반대를 내세워 지지를 얻었고,

.
.
.

#그럼_트럼프는?

2016. 11. 16.

예수를 믿는다?

왜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믿지 않을까요?

=====

저는 성경 무오, 근본, 보수진영에 속한 사람입니다.
여기에 속한 사람이기에 아는 것이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믿습니다.
다만, 믿음의 내용이 다를 뿐입니다.

기독교인들이 믿는 내용은,
1) 그가 나의 죄 때문에 죽으셨다.
2) 그의 죽으심으로 내 죄가 용서받았다.
3) 그가 부활하신 것이 증거다.
4) 그의 부활과 같이 나도 부활할 것이다.

이와 같이,
기독교인들이 믿는 내용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입니다.

예수의 가르침, 교훈, 비유, 계명은,
"믿음의 내용"이 아닙니다.
그저 부수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우선순위를 놓고 보면,
"죽음과 부활에 대한 믿음"이 가장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 믿음이 나의 "천국행"을 결정짓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예수의 가르침은 뭘까요?
바로, 천국행 티켓을 소유한 사람들에게는,
"상급"과 연결된 것에 불과합니다.

즉, 천국행 티켓을 소유한 자가
예수의 가르침도 지켜 행했다면
큰 상급을 받을 것이나,

지켜 행하지 않았다면,
"부끄러운 구원"을 받는 것이죠.

그러니 제일 중요한 것은,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은,
예수의 가르침을 따라 행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믿느냐"하는 것입니다.

-----

"예수천당 불신지옥"

이것이 기독교인들의 신앙을
아주 잘 드러내는 문구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아무런 의심없이 맹종했으나,
이제는 더 이상 따를 수가 없어,
고민 끝에 사역을 내려놓기로 결정했습니다.

어떤 설교를 듣고

사람에 대한 이해가,

"티끌과 같은"
"벌레와 같은"
"죽어 마땅한"

이런 전제를 가졌다면,
그런 신학에
무슨 희망이 있을까요?

-----

아, 희망이 없어서
'메시아'에 기대는 건가요?

ㅎㅎㅎ

2016. 11. 15.

누가 형벌을 받을까?

지옥에는 누가 가고
형벌은 누가 받을까요?

=====

비-기독교인들이 이 말을 했다면,
당연히 '악인', '범죄자'라고 생각하겠지만,

기독교인들이 이 말을 한다면,
아무래도 '불신자'라고 생각하게 된다.

지난 주 대화가 생각난다.

"아무리 선을 행해도,
예수 안믿으면 결국 지옥가는 거 아닌가요?"

이게 기독교의 현실이다.
에혀...

.
.
.

아, 박영돈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지옥형벌을 받아야 할 사람은,
불신자가 아닐 것이라 믿고 싶다.

-----

박영돈 교수

"요즘 심판과 지옥형벌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더 확고해진다."

세 가지 메시지

저는

.
.
.

=====

목사입니다만,
스스로 느끼기에
다만 자격증 소지자일 뿐
목자라고 생각되진 않습니다.

(누가 누굴 어디로 인도합니까ㅎㅎㅎ)

기독교인으로서 제가 가진 메시지는

"사람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받은 존재를
'자녀'라 부르고 그들을 사람이라 부르듯,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받은 존재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또한 하나님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마세요."

(이단각이죠. 우습게도, 옛날엔 제가
이런 말하는 사람을 향해 정죄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창조자입니다. '나'도 창조자입니다.
어떤 인생을 만들어갈지는 '나 자신'에게 달렸습니다."

그리고,

"다만, 뿌린대로 거둘 뿐입니다."

-----

이제 11월도 반절이 지나갑니다.
이곳에서의 사역도 얼마 남지 않았네요.

가을 낙엽이 예쁘게 물들었습니다.
잔뜩 쌓인 낙엽을 보며,
지나간 바람을 붙잡아 봅니다.

.
.
.

#하늘이 되렵니다ㅋㅋㅋ

내 주인은 나다


보편적 진리

"역사적 사실은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에 의미를 갖는다."

그런가요?

=====

글쎄요.

동화책도 역사적 사실은 아니지만,
오늘날 의미를 가질 수 있지요.

소설책도 역사적 사실은 아니지만,
오늘날 의미를 가질 수 있구요.

무협지도, 만화책도 의미를 가질 수 있구요.
제가 쓴 일기도 마찬가지에요.

그런데요,
역사적 사실은 아니지만,
거기에 부여한 의미는
보편적 진리로 규정될 수 있나요?

예를 들어,
제가 쓴 일기의 의미를
포편적 진리로 규정해서
당신도 그렇게 받아들이게
해야 하나요?

그게 옳은가요?
아니면 이단인가요?

.
.
.

아, 종교 말이에요.

뭐가 문제냐

문제의 핵심을 그 사람의 '종교'에 가져가서

이 사람은 정통이니까 문제 없어, 혹은
이 사람은 이단이니까 문제 있어 같은

그런 판단이야말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

물론 저는,
위 사안과 상관없이,
종교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종교로부터 출애굽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나는 불편하다, 이 말이.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이 말이 참 불편하다.

2016. 11. 13.

감정이 상하면

감정이 상하면,
합리가 설 자리를 잃는다.

감정이 통하면,
합리를 초월해 버린다.

=====

별 것 아닌 일,
별 것 아니게 넘어갈 수도 있고,
기여코 사과를 받아낼 수도 있다.

가만 보니,
객관/합리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의 문제더라.

2016. 11. 10.

신학의 대립

예언자들의 메시지는
'하나님께 받아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자기의 생각을 말하는 것'인가?

=====

북이스라엘의 신학과
남유다의 신학은
첨예하게 대립했다.

남유다의 신학은 확장된 시온 신학으로,
"다윗언약은 영원하고 무조건적이기에
예루살렘이나 성전이 파괴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북이스라엘의 신학(예레미야)은,
"아니! 언약을 순종하지 않았기에
유다는 땅과 성전 모두를 잃게 될 것이야!"

한 세기 전 이사야는
시온 불가침을 설교했다.

이제 예레미야는
그것이 '잘못된 신학'이며,
백성들이 이 신학에 '희망을 거는 것'은
헛된 일임을 말한다.

-----

그렇기 때문에 폰 라트는
"예언자들의 메시지는
무시간적인 진리가 아니라,
'역사의 특정한 시간에
해당하는 특정한 말'
이라고 말한다.

 - 『예레미야서 더 가까이 보기』, pp.124-5

나란 무엇인가?

다듬어야 할 내용이지만,
어메이징 필로소피를 읽고,
한번 생각해 본 생각입니다ㅎㅎㅎ

=====

1. 르네 데카르트

르네 데카르트는 의심을 통해
'나'라는 존재를 확인했다.

모든 것은 의심하고 부정할 수 있으나,
의심하고 부정할 수 없는 유일한 대상이,
의심'하고' 부정'하고 있는 나라는 존재'였다.

2. 자유의지

거시세계의 물리법칙에 따르면,
모든 사건은,
과거 사건들의 상태(P)와
물리법칙(L)에 따라 발생한다.

따라서,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

그래서,
철학자들은 대체로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을 부정한다.

3. 토마스 아퀴나스

그런데, 제 1 원인은
모든 연쇄의 출발점이고,
사건들의 연쇄 바깥에 있는 것이다.

4. 자유의 의미

토마스 아퀴나스에 따르면,
제 1 원인은 사건들의 연쇄 바깥에 있다.
다른 말로 제 1 원인은
사건들에 '매여있지' 않다.

즉, 제 1 원인은 자유롭다.

5. 제 1 원인과 나

르네 데카르트에 따르면
모든 것을 의심하고 부정할 수 있지만,
의심과 부정으로부터 독립된,
만약 포함되면 모순을 일으키는 존재로,
'나'를 확인한다.

이 '나'에다가
'제 1 원인'을 넣으면 어떨까?
역시나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즉, 제 1 원인이 없으면
의심할 수도 없고
부정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 1 원인'을 '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6. 나와 자유

나는 모든 연쇄의 출발점이고,
사건들의 연쇄 바깥에 있다.
그렇다면 나는 사건들에 매여있지 않다.
즉, 나는 자유롭다.

7. 나는 누구인가?

구원의 다른 의미

에리히 프롬이 말하는 식으로
하나님을 이해한다면
구원(주인의 교체)는,

'하나님'이라는
또다른 주인이 생긴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라는
정체성의 회복이라 할 수 있겠다.

=====

구약과 후기 유대교 전승은 우상숭배 금지를 하나님 숭배나 그보다 높은 차원으로 격상시켰다. 우상숭배 흔적이 모두 지워져버린 경우에만 하나님을 숭배할 수 있다는 점이 아주 분명해졌다. 그래서 탈무드는 이렇게 말한다. “우상숭배를 거부하는 자는 누구든 모든 율법을 제대로 준수한 것이나 다름없다.”(훌린[Hullin] 5a)

 - 『너희도 신처럼 되리라』, pp.49-60.

보편 구원(Universal salvation)은 유대교를 고수하거나 심지어 하나님을 숭배하는 것과 상관이 없다. 우상숭배를 하지 않고, 하나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다고만 하면 인류는 행복의 조건을 달성할 것이다.

 - 『너희도 신처럼 되리라』, pp.60-71.

인간은 하나님에게 복종함으로서 1차적 유대(혈연, 지연, 사회관계)에 대한 애착을 버리고 다른 인간에게 복종하지 않을 수 있다. 즉, 하나님의 권위는 인간에게 인간의 권위로부터 벗어나는 자주성을 보장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가? 일반적으로 말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러나 탈무드의 율법과 후기 유대교 문헌에서는 인간에게 완전한 자율성을 보장하는 경향이 엿보인다.

 - 『너희도 신처럼 되리라』, pp.75-94.

구원이란?

구원이란?

늘 품었던 질문이지만,
이렇게 명쾌한 답이?!

'주인이 바뀐다.'

=====

성서에서 ‘구원’이라는 용어,
혹은 히브리 원어에 대한
또 다른 적절한 번역인 ‘해방’은
‘자유를 얻는다’는 뜻보다는
‘주인이 바뀐다’는 뜻으로 쓰인다.

구약과 신약에서 구원은 ‘주인의 교체’를 뜻한다.

 - 『예레미야서 더 가까이 보기』, p.115

-----

나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라면
나는 여전히
노예
.
.
.

2016. 11. 9.

예수의 길

성경에서 예수의 길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었던 길이라고 저는 읽었습니다.

따라서, 당연히,
세상 사람들은 악하고
예수의 길을 걷는 사람들은 선하다는
그런 전제를 가질 수 없습니다.

오히려, 예수의 길은
지극히 당연한 선함을,
지극히 당연한 사랑을
드러내는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두고 보라!

세상 사람들을 다 악하다고 전제하고
그래서 예수의 도를 행하는 사람을
핍박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하는
이런 대화. 밥맛입니다.

=====

정말 100% 공감합니다.
방금 전에도 아내와 그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헛점이 드러났네요.

늘 들어왔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선함보다
기독교인들의 선함이 훨씬 우월하다고.

세상 사람들의 선함은
죄인들의 변덕에 불과하다면,
기독교인들의 선함은
의인들의 선함이라고.

이런 식의 우월함을
들어왔고 배워왔습니다.

그러나
이게 말이나 됩니까?

선은 선입니다.
악은 악입니다.
누구나 압니다.

물론, 명료하게 나눌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상에서 누구나 공감하는 부분 역시 있습니다.

신자와 비신자로 선 긋는 대화,
저도 아주 싫어합니다.

-----

저는 인과응보를 믿습니다.
뿌린대로 거둔다고 봅니다.

신자는 독을 먹어도 괜찮고,
비신자는 아니라구요?

두고 보십시오.
독을 먹고도 괜찮은지.
악을 행하고도 괜찮은지.

생각해보라!

한번 생각해 보라!
성경 어디에,

고아와 과부를 보살피며
먹거리와 쉴자리를 제공하며
섬기고 봉사하고 헌신하고
사랑하고 용서하고 용납하고
이해하고 기다려주는 사람을

'단지 예수님 안 믿는다고'
'단지 하나님을 모른다고'

정죄하고 징벌하는 장면이 있는가!

-----

선한 사람을,
착한 사람을 향해,
진노하시는 하나님을,
본 적이 있는가!

-----

신자의 선함과
비신자의 선함을
다르다고 구분짓는
바로 그 기준은
누구의 것인가?

이성이 잠자고 있으면

이성이 잠자고 있으면 어쩔 수 없지요.
저도 한때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정신이 없던 시절입니다.

나를 나답게 살게 하는 것,
그보다 더 중요하고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누군가의 가치관에 의해서
종교의 기준에 의해서
내가 외면되어야 한다면,
차라리 그를,
차라리 종교를,
제가 외면하겠습니다.

이분이 말하는 기독교는,
이분이 말하는 가치관은,
이분이 말하는 기준은,
제가 외면해야 할 것이네요.

"나를 지키기 위해서."

존 맥아더의 정치 생각

니체

‧ 프리드리히 비헬름 니체(1844-1900)

“내 최고 관심사는 도덕의 개념이었소.
내 생각에 도덕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생명에 반하는 것’이오.

도덕주의자들은 인류를 개선시키려 하고 있소.
인류는 애초부터 개선될 필요가 없는데 말이오!

도덕주의자들은 기본적인 인간성,
즉 우리의 욕구, 우리의 본능 같은 것들을
부정하고 그걸 없애버리려 하고 있소.

다들 알겠소?
그게 바로 우리라는
존재의 본성인데 말이오!”

 - 어메이징 필로소피, p.169

2016. 11. 8.

철학자들은

‧ 철학자들은 대체로

“철학자들은 대체로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주장을 펼칩니다.”

 - 어메이징 필로소피, p.98

데이비드 흄

‧ 데이비드 흄(1711-1776)

“제 자유로운 행동은 욕망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욕망은 결정론 때문입니다.

제 욕망은 과거에 일어난 일과
물리법칙에 따라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 행위는 자유롭습니다.
왜냐하면 제 욕망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에는 그게 자유의 핵심입니다.

<여러분이 다른 것을 할 수도 있었다.>

제 욕망이 다를 수 있었다면,
다르게 행동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 양립가능론에서 말하는 자유의지

1. 인간의 행위는 욕망에 의해 결정된다.

2. 인간이 그 밖의 다른 어떤 것을 하기를 욕망한다면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참이다.

 - 어메이징 필로소피, pp.110-112

양립불가능론

‧ 양립불가능론에서 말하는 자유의지

“내가 A 이외의 행동을 할 수 없었다면,
A라는 행동은 내가 자유롭게 한 것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결정론이 참이라면, 우리에게는 자유의지가 없다.

만약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면, 결정론은 거짓이다.

 - 어메이징 필로소피, pp.106-108

데모크리토스와 반론

‧ 데모크리토스(BC 460-370)

“자네들이 알고 싶은 것은
이 당구대 위에 모두 있다네.

이 큐볼을 치면 움직이게 되어 있는 것이
여기 있는 모든 공들의 궁극적인 운명이라네.

물리학자들은 이렇게 말하지.
모든 공의 경로는 수학적으로 결정될 수 있다고.
담배꽁초 때문에 당구대 바닥에 불만 나지 않는다면 말일세.

그런데,
그건 우주에서 원자의 경로도 마찬가지야.
자네들도 다 원자로 되어 있으니,
절대로 이 결정론자들의 춤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네.

우리는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걸세!"

“모든 사건은
과거 사건들의 상태(P)와
물리법칙(L)에 따라 발생한다.”

 - 어메이징 필로소피, pp.103-105

‧ 현대 과학의 입장

“그러나,
양자역학에 따르면
아원자 입자들은
과거에 있었던 일이나
물리법칙에 따라 움직이지 않아요."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미시 수준에서는
비결정론을 받아들인답니다.”

 - 어메이징 필로소피, p.114

2016. 11. 7.

자유의지의 네 지도

‧ 자유의지의 네 지도

① 결정론
미래에 일어날 사건은 모두
과거의 상태와
물리법칙에 따라 이미 정해져 있다.

② 비결정론
과거의 상태와 물리법칙에 따라
이미 정해져 있지 않은 미래의 사건이
적어도 하나는 있다.

③ 양립가능론
결정론과 비결정론은
논리적 모순없이 양립
가능하다.

④ 양립불가능론
결정론과 비결정론은
논리적으로 양립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 어메이징 필로소피, p.99

나는 나인가?

‧ 쥘리앵 오프루아 드 라메트리(1709-1751)

내 팔이 생물학적으로 완벽한 기계라면,
나는 여전히 나인가요?

다리는요?
내 몸통은요?

모든 걸 대체할 수 있지만
뇌는 안 될 거라고 말씀하시겠죠?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제 기계 뇌는 내 생물학적 뇌와
아주 똑같은 기능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나는 내가 아닌가요?”

 - 어메이징 필로소피, p.93.

‧ 데이비드 차머스(1966-)

기계는 의식이 없습니다.

사랑도 증오도 할 수 없고,
희망도 꿈도 없고,
무서워하거나
깊이 생각하지도 못하고,
무시하지도 못하죠.

말 그대로 ‘마음’이 없는 거예요.

그러므로 내 생각에는
라메트리가 말한 기계는
‘좀비 버전’ 같은 겁니다.

 - 어메이징 필로소피, p.95.

누가 지켰나, 이 나라를?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 만세"

=====

기독교의 신이
이 나라를 지켰다고
기독교인들은 믿는다.
믿음 자체를 부정하진 않는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그러나,
하나하나 살펴보면,
"기독교의 신이 지켰다"고 하기엔,
그 자리에 있는
"정직하고 신실한 사람들"이 눈에 밟힌다.

그러므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지켰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 자리에 있는
정직하고 신실한 사람들이
지켜온 것이 아닐까?"

2016. 11. 6.

데카르트, 나는 존재한다

나는 존재한다!

- 르네 데카르트(1596-1650)

=====

내가 출발점으로 삼은 것은
내 감각을 의심하는 일이었어요.
그러고는 내 감각이라는 것이 실제로는
결코 믿을 수 없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요.
내 감각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어요?

모든 것의 토대가 되는 어떤 참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모든 감각 경험과 별개로 증명되어야만 해요.

‘나는 _____을 의심할 수 있다.’

이 문장의 공백에다
내가 믿고 있는 것들을 채워 넣었어요.
거의 모든 것을요.

거기에 어떤 것을 넣어야
문장 전체가 참이 되는지를 알아보았어요.
즉 거의 모든 것을 다 의심해본 거지요.

그리고
그 사실을 부정함으로써,
전체 문장을 모순으로 만드는
단 하나의 믿음을 찾아냈어요.

‘나는 존재한다!’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내가 지금 의심하고 있다면,
그런 나는 반드시 존재해야만 하는 거에요.

뭔가를 의심한다는 것은,
의심하는 자의 존재를 상정하지 않으면 불가능해요.
여기서 바로, 내가 존재한다는 결론이 나오지요.

내가 가졌던 모든 믿음을 하나하나 검토한 결과
나는 확실한 그 무엇을 찾아냈어요.
감각에 의존하지 않고도 참인 믿음을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Cogito, ergo sum)

 - 어메이징 필로소피, pp.48-49

-----

데카르트는 소문처럼
학자들의 전용어인 라틴어로
“Cogito ergo sum”이라고 하지 않았고,
당시에 학자들이 상스럽다고 여겼던
보통 사람들의 프랑스어로 『방법서설』을 쓰며
“Je pense donc je suis”라고 했습니다.

학자들은 못 알아들어도
일반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러나 말이 그만 앞뒤가 뒤바뀌었습니다.
다들 아시잖아요,
있으니까 생각하지,
생각하니까 있을 수는 없잖아요.

 - 전헌, 『다 좋은 세상』, pp.92-93

2016. 11. 4.

짜증 #2

어둠의 영이
대한민국을 흔들고 있으니,
깨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권세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

아,
답 없다.
노-답이다.

.
.
.

기도해야지.
정신차리라고.

누구 탓으로
돌리기 참 쉽다.

이건 타고난 거야.
천성이야 정말...

짜증 #1

그런데
바사 왕국의 군주가
이십일 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
(단 10:13)

=====

설마 이 구절을 근거로,
악한 영이 대한민국을 흔들고 있다는 말을
들을 줄이야...

미치겠다...
한국 교회, 다 그런건 아니겠지...
우리 교회만 그런 거겠지...

-----

대통령이
기독교인이면
아무 문제 없나?
(없었나?!!!!)

왜 항상 기독교인들은,
문제를,
이런 식으로 보는 거지?

짜증나 미치겠다...

2016. 11. 3.

동성애



















앨런 튜링(1912-1954)은
동성애 혐의로
"감옥에 가는 대신 화학적 거세를 받아들였다."

.
.
.


동성애는 범죄였군요.

어메이징 필로소피

2016. 11. 1.

개혁주의

"개혁된 교회는
계속 개혁하는 것은 맞지만,
'교리는 이미 완전하게 개혁되었기에',
개혁된 교리를 또다시 개혁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맞춰가야 하는 것입니다."

 - A 교수의 강의 중에

=====

한국의 개혁주의는,
16-17C에 개혁된 내용을 다루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개혁'을 다루지 않습니다.

이들이 말하는 '개혁'은
사실상 그때 완성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개혁을 이야기해도,
그것은 개혁주의자들이 말하는 개혁이 아닙니다.

.
.
.

"개혁"이라는,
좋은 단어를 갖다 쓰긴 하지만,

이제 그 단어는
그저 버릴 단어일 뿐입니다.